상단여백
HOME 신앙생활
루터 오백주년과 종교개혁의 재발견 (71)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김재성 교수

1541년 『제네바 교리문답서』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매우 강조하였다. 칼빈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요 17:3)는 표어를 강조하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신앙심에서 거룩한 두려움과 존중하는 삶을 추구하였다. 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오직 계시의 말씀만이 제시하는 것이요, 참된 지식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 1541년 제네바 교리문답서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고 단호하게 제시한다;

무엇이 사람의 제일되는 목표인가?(제1문항)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까?(제2문항)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므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삶을 바쳐야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무엇입니까?(제6문항)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합당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분 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며, 그분의 뜻에 따라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칼빈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공경하는 일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면서, 모든 제네바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습관화가 되게 하도록 지속적으로노력하였다.

4. 칼빈의 인내와 찬란한 열매

종교개혁 운동이 정당한 것의 회복이라서 개신교가 교회를 새롭게 세워나가는 것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확신과 합법성을 가졌다하더라도, 칼빈의 개인적인 삶을 살펴보면 시대적 고난과 개인적인 고통의 연속이었다. 
1531년 5월 26일, 칼빈의 아버지(Girard Cauvin)가 사망했는데, 고향 노용의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출교처분을 받았고, 종부성사를 치루지 못하였다. 칼빈은 이런 처절한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해 놓지는 않았다. 그 후로 본인은 피난민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에 들어가게 되면, 칼빈은 즉각 체포될 처지에 놓여있었다. 어린 아들 쟈크의 죽음, 1549년 봄 오랫동안 병고로 고생하던 아내의 죽음, 끊임없이 자신의 신체적 질병 등으로 칼빈은 괴로움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전개되는 고난을 이겨내고 인내하면서, 전세계 기독교 교회를 통해서 수 천 명의 자녀를 가졌다고 칼빈은 위로를 삼았다. 
환난을 이겨내고 인내를 이루고자 진력했던 칼빈은 제네바의 설교자에서 스위스 지역의 지도자로 각인되었고, 마침내 전 세계적으로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체계화시켰다.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고난과 박해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저지대 국가들에서 두드러졌고, 신성로마 제국이라고 자부하던 유럽의 각처에서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분야에서도 점차 확산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중요한 신앙적 유산이자 특징적인 신앙생활의 모델은 고난당하는 교회의 모습이었고, 이는 초대교회로부터 계승되어졌으니 특히 순교자의 피는 교회를 위한 씨앗이라는 터툴리안의 교훈이 회자되었다.

<계속>

김재성 교수  webmaster@kidokline.com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성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기독교라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7  |  등록·발행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라인  |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환의
청소년보호책임자: 유환의  |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02)817-6002 FAX  |  02)3675-6115
Copyright © 2019 기독교라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