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중앙교회 담임 황인찬 목사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는 그의 책 “원리 중심의 리더십(Principle-centered Leadership)”을 통해 성공하는 리더들의 특성과 건강한 리더십으로 '원리 중심의 리더십'을 소개하고 있다.

선지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면서 이 원리중심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위대한 역사(役事)를 완성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가 중시한 리더십의 원리를 느헤미야 3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사역의 현장에서 주의 일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중시해야 할 원리들이다.

첫째는 협동의 원리다.

느헤미야는 자기 홀로 이 사역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함께 하는 협동사역으로 이 두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역사를 이루고자 했다.

예레미야는 협동의 원리를 중시한 리더로서 느헤미야 3장에는 무려 75명이상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느헤미야 3장의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있었을까? 느헤미야 혼자 이 사역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때에 대 제사장 엘리아삽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느3:1)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 '함께'이고, 느헤미야 3장에 제일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그 다음은…"이다. '그 다음'이 들어내는 표현은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협동하여 성(城)을 재건해 낼 수 있었는가의 설명하고자 함이다. 이것이 바로 협동의 원리다.

우리 한국인들의 리더십에서 결격사항 제1호가 바로 이 협동정신의 결여라고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은 다른가?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신다. ‘몸’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표현의 특성은 여러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협동하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사람의 몸이야말로 가장 탁월하게 네트워킹 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은 교회를 왜 몸이 되게 하셨을까? 주의 일이야말로 혼자 할 수 없는, 해서도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역이 진전되지 못하는 현장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비협동적인 특성이 있다. 세상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쓴 이규태선생(李奎泰 1933~2006 언론인)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이 협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산업화의 과정에서 과잉된 경쟁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선생은 이렇게 변질된 오늘의 한국인들을 '독 속의 게'에 비유한다. 독 속의 게(蟹) 한 마리 한 마리는 모두 독 밖으로 기어 나올 충분한 역량이 있는데 기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게 한 마리가 기어 나오려하면 다른 게가 다리를 물고 늘어진다. 게들의 생존방식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이다.

오늘의 한국인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상생의 철학을 익혀야 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 공동체와 신도들이 말씀의 원리를 따라 배우고 익혀야할 원리다.

바울사도는 신앙생활의 원리를 "협력"의 원리로 소개한다. 교회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서로 서로를 지원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순종하고, 실현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사의 원리다.

느헤미야 3장에는 적어도 15가지 이상의 다양한 직종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직종을 가진 이들이 모두 예루살렘 성(城)의 재건사역에 동참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모두 자기들이 일하게 될 사역의 자리를 책임지고, 건축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양문(sheep gate)건축을 담당한다. 양문은 제물인 양들을 가지고 출입하는 문이다. 그 문의 용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제사장들이 양의 문을 책임지고 건축한 것이다.

어문(fish gate)은 두로 쪽에서 오는 생선들이 이 문을 통과하여 시장에 가서 팔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스나아의 자손들은 아마도 어업에 종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그들이 이 어문을 건축하게 했다. 대부분의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집 부근의 성벽을 건축하게 했다. 내가 사용할 부분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내가 책임지는 형식으로 공사가 진행된 것이다. 이것이 은사배치의 원리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