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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잡족 (출 12:38)
   

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출애굽 여정에 이스라엘과 ‘동행’한 여러 집단들이 포함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문의 ‘수많은 잡족’(출 12:38)이 누구인지 규명하기란 어렵다. ‘에레브 라브’(בר רבע)는 ‘섞여있는 큰 무리’라는 뜻이지 씨족이나 혈통적 단위로 볼 수 없다.<Houtman 2, 202> 문자적으로 보면 ‘여럿이 섞인 큰 집단’으로 보면 된다. ‘에레브’는 다양한 뜻을 함축하고 여러 용례가 있기 때문에 주요 쓰임을 중심으로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우선 에레브에 해당하는 세 자음은 이집트에 내린 재앙 중의 하나인 파리 ‘떼’(swarm)를 지칭한다(출 8:21. cf. 시 78:45; 105:31). 여기서는 수많은 날짐승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며 무리지어 있는 상태다. 겉으로 무질서한 듯 보이나 안으로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유지되는 집단이다. 그러니 대규모의 파리 떼라면 바로와 이집트를 공포에 빠뜨릴 수도 있고 순식간에 한 지역을 폐허로 만들 수도 있다(출 8:24). 출애굽의 구성원을 추적하는 과정에 ‘수많은 잡족’은 혼잡스런 무리가 한 데 모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다.

2) ‘에레브’는 사실 아랍, 또는 아라비아의 어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에레브는 저녁을 뜻하기도 하지만 ‘떠돌이, 유목민, 상인, 약탈자’ 등으로 중동의 초원(steppe)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아랍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대상(caravan)의 주요 품목이던 향수 때문이었다. 본래 고대 인도의 종교의식에 활용되던 향료가 아랍의 대상들을 통하여 그리스와 로마 등지에 전달되었다. 이때부터 낙타를 앞세운 사막의 긴 행렬은 아랍과 그들의 풍속으로 각인된 것이다. 아랍 사람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집단을 이루어 이동하며 살았다. 구약에서 아라비아는 무역상(왕상 10:15), 상인(겔 27:21),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사 13:20)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술되어 있다. 이사야는 아라비아를 사막의 대상과 들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로(사 21:13), 예레미야는 음란과 행악으로 땅을 더럽힌 무리라고 질타한다(렘 3:2). 이점에서 아랍은 출애굽의 수많은 잡족에 해당하는 최소 충족 요건을 갖춘 셈이다.

3) ‘에레브’는 여러 부류가 뒤섞여 있는 무리(렘 25:20; 겔 30:5), 재료가 다른 실로 짜여있는 경우(레 13:48)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어중이떠중이들이 무질서하게 모인 집합(riffraff)이다. 민수기에는 ‘섞여 사는 다른 인종’(ףספסא)이라고 언급되었다(민 11:4). 출애굽에 참여한 비이스라엘이란 뜻이다. 의성어처럼 들리는 아사프수프는 구약에 단 한 차례 언급되었기 때문에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출애굽 구성원이 단일 혈통이 아니라 하층민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만약 아사프수프를 이집트 접경의 갈대(ףס)가 무성한 지역에 모인 무리(ףסא)로 해석할 수 있다면 출애굽의 구성원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근거가 된다. 그러면 에레브라브는 저녁 시간(רבע)에 모여 탈출한 집단(בר)이 된다. 실제 이스라엘은 라암셋에서 떠난 무리를 일컫는 개념이다(37절). 지금까지 출애굽의 참여자를 계급적인 차원에서 해석해왔으나 에레브라브나 아사프수프는 출애굽의 출발시점과 지점을 규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즉 후자는 특정 거점에서 회집한 무리, 전자는 약속한 기한에 맞춰 탈출을 감행한 집단 등처럼 다양한 형태의 탈출 단위가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에레브라브’에는 히브리, 또는 아랍을 암시하는 수사적 장치가 맞물려 있다(민 11:4; 사 2:11; 61:1). 즉 히브리가 강이나 사막을 ‘건너온 사람들’로 노예와 노동자 그리고 전쟁 포로 등을 가리키듯 에레브라브는 상이한 계급과 다양한 부족이 섞여있는(mixed multitude) 상태다. 히브리가 당시 사회의 소외 계급을 가리킨다면 ‘수많은 잡족’은 탈출에 뜻을 함께 하고자 특정한 시점에 모인 무리들이다. 각 집단의 출발 지점이나 시점은 다를 수 있으나 출애굽에 대한 열망과 목표는 다르지 않다. 출애굽을 경험한 ‘수많은 잡족,’ 곧 에레브라브는 야웨 신앙 아래서 본래부터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이스라엘이다.
 
 

김창주 교수  webmaster@kidok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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