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김명환 목사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권력은 백성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다수의 목사와 교인들은 대한민국을 구원해 줄 정치적 메시야로 대망해 왔고, 대망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메시아로 여겼던 이승만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정적은 독립운동을 벌인 독립투사였다. 또한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하여 친일파들과 협잡해 무수한 양민을 학살했다. 이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대한민국 정치적으로 구원해준 메시아로 생각하는 이들이 한국교회 안에 존재한다는데 안타깝다.

어느 교단의 교단장을 지낸 증경총회장은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김규식 선생 등이 없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이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국교회 지도자의 모임에서 거침없이 설파했다. 어느 목사는 자신이 태어나서 키워준 고향까지도 부정하며, “과거에는 ‘빨갱이’였는데, 모 대표회장을 만나, 이승만 대통령을 알고부터 전향했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이승만 대통령은 ‘빨갱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 중 일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 이스라엘 민족도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한 스루 바벨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스루 바벨의 정적들은 이를 반대했다. 흩어진 민족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먼 미래를 약속 받을 수 있다. 힘이 있다고 해서 흩어진 백성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없다는 애기다.

정치를 잘 한다고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권력자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강조하셨다. 겨자씨는 생명을 가졌다. 우주를 품고 있다고 해야 옳다. 예수님은 생명을 품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셨다. 자신은 십자가에 달려 죽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은 세계 곳곳에서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삶의 현장, 공동체, 가정과 사무실서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헤롯은 솔로몬 보다도 두배나 큰 성전을 건축했다. 하지만 헤롯은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큼이나 작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에 공생애를 보내셨다. 우리 삶의 현장서 일어나는 방언이나, 기적이나, 말이나 등등 모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이다. 성령은 절대로 누구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방인도 열납 하시고, 받아주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무조건 크게 달라고 애원한다. 큰 기적을 바라는 곳에는 늘 냄새가 난다. 종들은 하루종일 큰 일을 해도, 복종하면서 살면서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무엇을 달라고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님의 베풀어주심에 무조건 감사한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의 신앙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안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행위에 가치를 두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진정한 이웃은 상대와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부부간에, 이웃간에 불편하면, 딴 길로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오늘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없애는 것에 대해서 찬반논란이 뜨겁다. 특목고는 목적과는 달리 입시중심의 교육에서 탈피하지를 못했다. 특목고의 원래 목적은 사람을 교육시키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설립됐다. 특목고들이 여기에서 벗어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입시중심의 교육을 실시한다면, 과거 입시중심의 교육을 실시한 학교와 무엇이 다른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들은 큰 교회만을 고집한다. 신학교는 큰 교회를 만드는 교육을 실시해 왔다. 목회자들은 교회에 하나님이 게신가를 따지지 않는다. 무조건 교인이 몇 명이냐고 묻는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목회자들이 인지한다면,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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