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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기에 사모하는 행복②
   

의왕중앙교회 담임 황인찬 목사

또 이 팔복은 예수님의 행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니 너희도 행복 하라.'는 주님의 사랑으로 빚은 따뜻한 마음이 이 팔복의 말씀 안에 있다. '복이 있나니'는 감탄사다. 우리말의 '복이 있나니'에는 감탄의 뉘앙스가 있지만 원어의 이 문장은 완전히 감탄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행복이여! 온유한 자의 행복이여!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행복이여!' 하는 말씀과 같다. '심령이 가난하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아는가? 화평케 하는 생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해 지는지를 아는가?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감탄과 감격이 이 말씀 속에 있다.

'복이 있나니'의 헬라어 '마카리오스'(makarios)는 사람들의 행복을 가리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나님의 행복(?)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복이 있나니'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행복(즐거움)은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의 행복을 가리킨다.

이 복 있는 말씀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도는 '내가 누리는 행복을 너희도 항상 누리기를 바란다.'는 주님의 심정이 들어있다. '너희도 나처럼 심령이 가난하여 행복한 자가 되라.' 는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속삭임이 이 말씀 가운데 있다. '너희도 의에 주리고 목마르면 나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 주님의 마음을 말씀에 담고 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생을 사셨다. 그만큼 가난하셨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으셨으며, 그만큼 고통을 체휼(體恤)하셨으나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주님 심령의 행복이다.

우리가 이 심령의 행복을 소유할 수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이리라. 만일 가난하고 온갖 핍박과 질병 속에서도 행복한 그 사람에게서 그 행복을 누가 앗아갈 수 있는가? 눈물 흘리고 슬퍼하고, 애통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람에게 그 행복을 무엇이 빼앗을 수 있는가? 이 세상은 큰 소리를 쳐야 이기고, 온유하면 손해를 보지만 온유하기에 손해를 보면서도 행복한 그 사람의 행복을 누가 빼앗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행복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줄 수가 없고, 빼앗아 갈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고, 하나님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이 행복을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명시처럼 인생은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졌다.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 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에 매달리고 일한다. 마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을 얻는데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잘못 되고,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잘못 들었다.

미국의 진보적 사상가 아그네스 레플리어(1855~1950)는 '우리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밖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자기 밖에 있는 무엇을 통해 행복이 온다고 믿고 있다.

맹자는 인생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과 성(性)을 즐기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바가 있다. 돈과 명예와 권세가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닌다면 길을 잘못 든 자의 그릇된 생각이다. 돈과 명예가 행복을 주었다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지혜의 왕 솔로몬까지도 헛되다고 말했을 정도다. 사실 그것들이 행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것들이 행복을 주는 것이라면 선진국에 사는 부요한 사람들은 벌써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의 인생을 구가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자살률이 높은 것을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아스피린과 진통제로 밤을 보내고, 진정제나 수면제를 먹어야 자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손에 넣어도 그것이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의 웅변적인 증거다.

죄는 우리 눈을 가리고 우리를 속인다. 죄가 행복을 주는 듯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순간적이다. 죄에 끌려가면 일시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고 행복해지는 것 같을 수 있다. 성을 추구하든지, 돈을 추구하든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추구하든지 죄는 우리를 잠깐 동안은 행복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고, 속임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확실한 해답은 모두가 실체가 아닌 허상이며 거짓이다. 쾌락도 재물도 행복을 주지 못한다. 명예나 권력도 행복을 궁극적으로 주지 못한다.

<계속>

황인찬 목사  webmaster@kidok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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