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 김재덕 안수집사 

2. 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양육’이 필요한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본 주제에 대한 필요성을 살펴보는 것이 본 주제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본 주제의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해주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접하시는 독자 여러분께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고 주의 깊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아이들의 양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시작이 여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무엇이 문제인지 잘 진단해야, 잘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많은 교육학자들은 교육(양육)은 사람의 인생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육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명암을 그대로 나타내는 바로메타가 됩니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는 짧은 기간에 눈부시게 발전해왔으나 예의, 질서, 인간존중 등은 빠른 속도로 쇠퇴해가고 있으며, 해가 거듭할수록 물질 중심주의의 가치관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주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존중의 추락에 대해서는 약간의 염려는 하고 있는 듯하나, 경제의 하락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크리스천 독자께서는 이러한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문제들은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도 다 존재했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마6:10). 지금 우리 사회는 선한 사회인가요? 우리는 행복한가요? 무엇이 행복의 기준인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질문들을 하고, 그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은 많은 돈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는 가치관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내려고,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업을 시키려고, 학교 교육과 사교육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사명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비행 청소년, 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자살, 살인, 특히 존족살인, 성문제, 실업 등으로 사회 전체가 심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사건들의 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삶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부족해서 오는 문제일까요? 물론, 우리 사회는 긍정적인 측면들도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문제들에 대한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하나님 중심의 자녀양육(교육)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보다 돈, 명예, 권력 등을 더 구하고 있지 않은가요? 그런 가치관으로 자녀를 양육(교육)해오고 있지 않은가요?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특히, 우리 사회가 경제(물질)에 너무 큰 비중을 두나보니 돈이면 만사 통과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이 삶의 편리함과 여러 가지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기여도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쉽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돈과 나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까지 돈을 위해 상업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셨으며(요2;14-1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른다.’고 하셨습니다(딤전6:10).

또한, 현대의 핵가족화, 도시화, 산업화 등의 변화는 가족보다, 인권보다, 하나님보다, 인간의 쾌락적 욕구와 소유의 욕구를 지나치게 증대시켜 왔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자녀양육의 중요성은 점차 사라져갔고, 부모들은 학교교육과 제도교육에 온전히 아이들을 맡겨놓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에는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세상적인 성공에 목숨을 걸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하고 자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는 사망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약1:15).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찾기보다, 세상의 성공을 찾고 있지 않은지요?

세상 최초의 교사는 부모입니다. 흰 백지에 무슨 그림을 그릴 것인가요? 그것은 부모가 하나님의 의와 세상의 성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녀양육은 부모의 인생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열매를 하나님께서도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7:9;눅3:9). 그것은 부모의 행·불행과도 관계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경우를 생각해봐야 합니다(삼상). 77억의 세계 인구 중에 태어난 부모의 자녀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아가게 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들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하여 가야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먼저 깨닫고, 그것들을 아이들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즉 부모들은 우리가 주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의 길로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영생의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이해력, 분별력, 사고력 등을 증진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목적은 영생이고, 공부는 수단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돈보다 영생하는 법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공허하고, 천국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주님을 만날 수 없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해서만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요14:6). 따라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변해야 자녀가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모전여전이요, 부전자전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찾아야 자녀도 따라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겔16:44). 즉 그것은 부모가 확고한 믿음 없이 아이의 양육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세상에 휘 들리면 자녀와 부모의 삶이 함께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양육을 무시하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사회풍조에 따라 학교교육만을 그냥 따라 갑니다. 그것이 올바른 교육방법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양육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교육, 특히 중고등학교 교육은 시험을 위한 하나의 지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풍조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 적으로 성공하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이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데,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필자는 세상 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한 사례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극히 주관적 판단입니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세상 풍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을 따를 것인지, 세상 풍조를 따라 갈 것인지, 선택의 문제입니다. 부모가 이것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자녀양육(교육)을 한다면, 자녀들은 세상 풍조와 하나님 말씀을 적당히 결부시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양육 방식만이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녀의 진정한 양육(교육)의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귀중한 일입니다.

필자는 신약과 구약 전체 중에서 교육학적 관점과 일치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하나님의 가르침의 일부 내용을 분석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양육’으로 제시합니다. 필자는 교육학자이지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적 혹은 목회학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이 사회과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듯, 필자도 그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본 주제를 고찰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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