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광야를 행진한다. 구약에 110여 차례, 출애굽기에 39 차례 언급된다. 더러는 ‘기둥’ 없이 ‘구름’과 ‘불’로 표기된 경우도 나온다(출 19:9,16,18; 40:38). 구약에서 불(שׁא)과 구름(ןנע)은 곧잘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된다. 사마리아 오경에는 ‘구름’과 ‘불’ 앞에 정관사(ה)가 없다. 이것은 사마리아 오경이 하나님 현존을 일회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뜻으로 봐도 된다. 광야유랑 기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야웨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보호한다는 상징성을 확보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지진이나 화산 등의 자연현상으로 간주된다. 얼른 떠오르는 자연계의 이미지다. 고대인들에게 화산폭발이나 폭풍우는 신의 분노나 계시로 간주되어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했다. 엘리야는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다(왕상 19:11f). 시편은 신의 임재나 현현을 그와 같은 자연현상으로 간간히 묘사한다(시 18:7; 29:3ff; 104:3f). 한편 성소의 향단과 등잔대는 다름 아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제의적으로 구현한 이다.

2) 떨기나무 불꽃이 모세 한 사람의 특정한 하나님 체험이라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경험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세가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야웨 하나님을 만나고 출애굽이 비롯되었다면 이스라엘은 신비한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을 통하여 길고 긴 출애굽의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사실 동일한 현상이 낮에는 구름처럼 보였고 밤에는 불처럼 보인 것이다. 따라서 구름과 불은 시인의 노래처럼 야웨가 낮이나 밤이나 항상 이스라엘을 안내하고 막아준다는 뜻이다(시 121:4).

3)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능동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존재의 표현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분이다. 그렇기에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존은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님은 신비롭게도 무형이며 비물질적이고 투명하지만 안개처럼 가시적인 존재로 비춰진다(출 14:24; 16:10 등). 모세가 율법을 수여받을 때 장면이 흡사하다. 즉 야웨가 불 가운데 내려와 구름 같이 떠오르며 온 산이 크게 진동한다(출 19:18). 따라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낮과 밤에도 그분의 현존을 인식할 수 있는 신학적 장치였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 인식의 역설적인 측면에 대한 이스라엘 신앙인들의 고민을 간파할 수 있다. 곧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위의 세 가지 설명으로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집약한 신학적 개념으로 간주해야한다. 왜냐하면 이 숙어적 표현에는 이스라엘의 경험과 정보로 충분히 묘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면모와 그들과 함께 하며 이끄시는 내재적인 측면이 동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른 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변증법적인 관계랄 수 있다. 유대 신학자 사르나는 유일신 신앙에서 하나님 인식의 배타성을 지적한다. 어떻게 동일한 하나님이 초월적이기도 하며 또한 내재적일 수 있을까?

따라서 이스라엘 신앙인들에게는 자연현상을 넘어 활동하시는 야웨의 초월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절묘하게 묘사할 신학적 고안이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사실 엇갈리는 야웨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비단 출애굽 공동체 뿐 아니라 구약성서에 줄곧 이어지는 딜레마였다. 광야에 진입한 후 이스라엘은 위기의 순간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묘사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하늘의 구름으로 은유하고, 만질 수 없는 그 분을 뜨거운 불로 의인화하여 야웨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즉 하나님의 초월적 활동은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낮의 구름기둥으로, 내재적 임재는 밤의 불기둥으로 묘사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항상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한 분 야웨로 언급한 것이다.

마침내 성막이 완성되자 낮에는 구름이 그 위를 덮고 밤에는 불이 그 가운데 있었다(출 40:38). 이로써 유일신 하나님의 모순적 혹은 역설적 측면을 해소시킬 수 있게 되었다. 더러는 ‘야웨의 영광’으로 통합되기도 한다(출 16:10; 24:16; 40:34f; 왕상 8:10f).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경험한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형상화되었다면 두 성품의 상호내주(perichoresis)는 그의 영광으로 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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