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이집트를 떠나고 석 달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일차 목표인 시내 광야의 산(ההר)에 도착한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한다. 그 내용은 다음 장의 십계명이다(출 20:2-17). 위 3절에서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자손’은 동어반복을 피한 이중 강조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잘 알려진 대로 두 이름이나 동일한 인물이고(창 32:28), ‘집’과 ‘자손’은 부분으로 전체를 가리키는 제유법에 해당한다. 이 구절은 한 집단을 연거푸 언급하며 의미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보여준다.

유대교 랍비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선포할 때 처음에는 부드럽게 그러나 나중에는 강한 어조로 말하였다고 설명한다.<Plaut, 522> 왜냐하면 앞의 대상은 야곱의 ‘딸들’이고 나중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 짧은 구절에 그렇게 민감한 차이가 있을까? 어떻게 그들은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자손’에서 여성과 남성의 청중을 구분한 것인지 궁금하다.

히브리어 두 번째 알파벳 ‘베트’(ב)는 이스라엘 지역의 가옥(תיב) 형태와 연관 있다. 보통 주택의 외관을 단순화시키면서 발음(ㅂ)을 따고 본래 의미는 내재화하였다. 자연히 이 글자에는 당시 주민들의 유목적인 삶의 단면이 들어있다. 즉 남성들은 사냥과 목축을 위해 집을 떠나고 여성들이 안전한 집에 머물며 자녀를 돌보았다. 따라서 여성이 주로 집에 있었기 때문에 집과 여성이 동등한 개념을 확보한 것이다. 한국의 ‘집사람’도 같은 맥락이다. 히브리어 ‘집’과 ‘여성’은 직접적이다. 곧 ‘딸’(תב)과 ‘집’(תיב)의 용례를 보자. 히브리어 명사는 절대형과 소유격에 해당하는 연계형 사이에 보통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특히 ‘집’ 바이트의 경우 복수형 ‘바팀’은 연계형에서 ‘바테’(יתב: 나의 집들)가 되어 흡사 ‘비티’(יתב: 나의 딸)처럼 들린다. 이렇듯 바트와 베이트는 용례에 따라 서로 호환적이어서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한다. 두 낱말은 실제 교차적으로 쓰인다.

해당 문장은 ‘야곱의 딸 이스라엘의 아들’로 읽어야 논리적인 대구(對句)가 되며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가 살아난다. 유대 랍비들은 이 점을 간파하고 야곱의 딸들은 부드럽고 여성적인 어조로 읽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크고 우렁찬 남성적 음성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야곱의 딸은 율법의 최초 교사가 된다. ‘여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정 모두를 교육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어머니는 자녀를 교육시킨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에 보낼 것이다.’ 유대교 격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계명의 말씀을 선포할 때 여성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성이야말로 계명을 준수하게 하는 촉진자(prompter)이며 자녀 교육의 실행자이기 때문이다.<Exodus Rabba 28:2> 그러므로 유대인은 모친 계열을 따른다.

그렇다면 야곱은 누구이며 이스라엘은 또한 누구란 말일까? 야곱과 이스라엘은 반복을 피한 중언법(hendiadys)에 해당하지만 의미상의 구별은 확연하다. 전자는 혈연으로 맺어진 야곱 가문의 후손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시내산에서 야웨와 맺은 계약 공동체이며 믿음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혈연공동체에서 출발했으나 핏줄에 얽매이지 않고 야웨 중심의 믿음을 함께 나누는 무리들이다. 나아가 야곱의 ‘딸’과 이스라엘의 ‘아들’은 메리즘(merism)으로 ‘모든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야웨 신앙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다.

이제 출애굽기 19장 1-2절에 사용된 동사의 인칭 변화를 놓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고,’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다’는 모두 3인칭 복수형으로 묘사되다가 ‘장막을 치다’는 단수형이기 때문이다. 곧 이스라엘이 복수 ‘그들’로 나오다가 그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듣기 바로 직전에는 ‘이스라엘’ 단수로 의인화된다. 오합지졸이던 이스라엘이 그제야 하나가 된 것이다.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율법을 야곱의 딸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하신다. “나는 너(단수)를 이집트 땅 종이던 집에서 인도해낸 네(단수) 하나님 야웨라”(출 2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