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보수 총무 김고현 목사

오래 전 KBS 주말드라마 '명가'가 방영을 됐다. 부자에 대한 대중적 시각이 곱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대로 된 부자"인 경주 최씨 일가의 이야기를 극화하여 방영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경주 최씨 부자집의 정당한 부(富)의 축적과 도덕적 부(富)의 행사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경주 최씨 부자집의 3가지 훌륭한 가훈과 이들이 살아왔던 삶을 소개한다.

첫째, 흉년에 땅을 사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재산증식의 도덕성'을 강조한 것이라는데 관심을 끌었다. 최씨 부자집은 내가 잘살려면 형제, 이웃 사촌 모두가 다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이웃이 편해야 내가 편하고, 이웃이 불편한데 내가 편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둘째, 만 석 이상 하지 마라는 것이다. 토지가 좁은 영남지방에서 만 석 이상의 소작료는 반드시 무리가 뒤따라 누군가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다. 소작료를 만 석으로 고정하자 땅이 늘면 늘수록 최 부자 집의 소작료는 낮아졌다. 최 부자집이 부유해지면, 소작인의 곳간도 덩달아 불어나는 독특한 경제 형태였다. 이른바 '상생의 경제'였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 부자가 더 많은 땅을 가지길 원했고, 팔 땅이 있으면 앞을 다투어 최 부자 집에 알렸다.

셋째, 어렵고 힘들 때 이웃과 함께하라는 것이다. 풍년의 기쁨을 함께 누리면 흉년의 아픔 또한 이웃과 함께 감수하는 것이 부자의 도리라 믿은 최 부자집 사람들이었다. 이 3가지는 최 부자집의 철두철미인 가훈이었다. 최부자는 식솔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 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남과 함께 상생한다는 생각을 지녀라. 그리고 남에게 피해가 없도록 행동해라. 세상을 살면서 느낀건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게되면 그 만큼 돌아온다. 그러나 남에게 기쁨을 주면 그건 몇천배로 나에게 돌아온다. 그것이 꼭 물질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성장으로 돌아오게된다. 항상 조바심 내지말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우리는 모두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이 말로 최 부자집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최부자의 집안의 인물로는 조선 시대에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 동학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개항기의 거유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최익현(崔益鉉) 등이 있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자 선행으로 잘 알려진 ‘10대 진사, 12대 만석, 400년 구제자’의 경주 최부자 최준(崔浚),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이며 한글 학자인 최현배(崔鉉培) 등과 같은 많은 학자, 명신, 지도자를 배출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씨족이자, 삼한 신라 시대 이래의 전통적 명문거족이다.

그렇다. 가질 수 있다 해서 모든 것을 가진다면, 언젠간 차고 넘치게 된다. 그러나 가질 수 있는 것에 반만 가지고 나머지 반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한다면, 나중에는 <나눔>보다 더 큰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경제이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리면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 묻듯이 다른 사람에게 <나눔>을 전하면 자신에게도 분명히 그 <나눔>의 가치가 돌아옵니다." ㅡ 좋은 글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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