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이스라엘의 유월절 맞이는 부산하다. 우선 아이들에게 촛불이나 전등을 들게 하고 이곳저곳을 샅샅이 청소한다. 특히나 침대와 책상 밑이며 식탁 주변을 두세 번 쓸며 빵 조각이나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한다. 심지어 책장 사이에 떨어졌을 빵의 흔적까지도 털어낸다. 유월절 기간에 이스라엘은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7절). 맛을 돋우는 이스트 없이 구워낸 빵이다. 아빕(Abib) 월 일곱째 날 혹은 열 나흗날부터 이레 동안 지키는 풍습이다. 이 때 식료품점의 빵 가게는 완전히 폐쇄하고 접근조차 금지된다.

이렇듯 무교병을 먹으라는 별난 명령은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출 13:2)와 함께 해마다 지켜야할 규례다. 히브리어 호크(קח) 또는 후킴(םיקח)의 번역이나 이따금 율례로 번역된 예도 눈에 띈다(출 18:16; 민 9:14; 15:15). 구약의 법체계는 율법(torah)이 맨 위에 있고 그 아래에 계명과 규례와 법도가 있고 다음으로 칙령과 훈령 등이 나온다. 좁은 지면에 모든 항목을 다루기 어렵고 법도(法度)와 규례를 비교한다.

흔히 법도라고 번역된 미슈파팀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규정들로서 그 해당 사항은 자명하고 들으면 절로 수긍이 간다. 예컨대 ‘품삯은 해가 지기 전에 지불하라’(신 24:15), ‘추수할 때 모퉁이까지 거두지 말고 이삭도 줍지 말라’(레 19:19) 등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내용이다. 예언서와 시편, 잠언 등에서는 ‘정의’로 옮겨진다. [‘정의’ 신 10:18; 32:4; 사 33:5; 암 5:7; 15; 24; 시 33:5; 37:28; 99:4; 106:3; 146:7; 잠 2:8; 8:20. 판결로 번역된 예도 있다(시 149:9).] 사회정의에 관련된 조항 등이 대부분 법도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규례(規例)의 한자가 설명하듯 오랜 관례를 통해서 익숙해진 규칙이다. 단수 호크, 복수는 후킴이며 레위기와 신명기의 정결례에 집중된다(레 10:11; 신 14장). 음식법(kosher)은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으로 나뉘지만 논리적인 근거는 허약한 편이다. 예를 들어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먹을 수 없다(레 11:7).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창 17:10). 왜 그래야하는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후킴 때문에 유대인들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랍비 색스(Jonathan Sacks)는 규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기에 ‘신의 뜻’이 있다고 풀이한다.(『차이의 존중: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말글빛냄, 2007)

본문 출애굽기 13장으로 돌아가면 무교병 식사는 초태생을 바치는 것과 더불어 해마다 지켜야할 규례다.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처음 난 것을 제물로 바친다? 누룩을 넣지 않아 맛없는 빵을 먹는다? 후킴에는 분명 웃음거리가 될 만한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야웨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며 믿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독특하고도 순수한 계율이다.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몸소 시내 산에 내려오시며,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셔서, 바른 법도와 참된 율법, 좋은 규례와 계명을 주셨습니다”(느 9:13). 느헤미야에게 규례는 납득할 수 없는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시내산에서 주신 ‘선한 율례’다.

교계 신문에서 보았던 카툰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 눈을 비비다 렌즈가 떨어져 개미에게 날아갔다. 개미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덮친 렌즈를 머리에 이고 엉금엉금 기어간다. 개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제 머리에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저는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규례의 영문을 알 수 없으나 후킴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규례는 오랜 관습법에 기초한 조례(ordinance)다. 수 천 년 동안 쌓인 경험과 지혜가 녹아든 생활 속의 규범이며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법조문이다. 모세는 유월절 기간에 유교병을 먹지 말라며 누룩을 보이지 않게 하라고 당부한다. 그 기간에 유교병을 먹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회중으로부터 끊어진다(출 12:15, 19)는 무서운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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