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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רבד(출 9:3)
   

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고대인들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신의 영역이었다(렘 14:12; 21:9; 겔 6:11; 12:16). 사람이 피할 수도 없고 대처할 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이 중에서 역병의 파괴력은 전쟁이나 가뭄보다 강력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지은 범죄로 인해 7년 기근, 3달 전쟁, 3일 전염병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았다(삼하 24:13). 왕으로서 그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흘간의 역병을 택한다. 그렇다고 전염병의 피해가 줄지는 않았다(15절). 그러니 구약은 역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하고 인간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일반적 관점에서 질병은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로 언급된다(잠 3:33). 곧 개인과 집단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추궁이자 처벌로 여겨진 것이다(출 15:26; 23:25). 고대 신앙인들에게 인과율에 근거한 하나님의 심판은 거의 절대적인 믿음이었다(시 58:11).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로 ‘폐병, 열병, 염증, 학질, 한재, 마름병, 깜부깃병’ 등은 성경 곳곳에 오르내린다(신 28:22). <70인역>은 돌림병(데베르)을 그리스어 ‘타나노스,’ 죽음으로 옮겼다. 타나토스는 죽음의 신을 가리킨다. 전염병은 순식간에 퍼져서 가공할 인명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죽음의 사신’으로 불린 것이다. 그만큼 두렵고 무서웠다. 나중에 ‘하나님은 의인에게 상을 베풀고 악인을 벌하신다’는 교훈으로 압축되었다. 이른 바 인과율이라는 신학적 교리다(시 1:6; 사 53:4; 암 4:10). 이 관점에 따르면 질병이란 죄와 불순종 때문으로 개인이나 공동체가 책임져야하는 하나님의 형벌이자 심판이었던 것이다.

세상 운영하는 방식: 인과율로 삶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왜 의인이 죄인들과 함께 고통을 받으며 죽어야하는가?(창 18:23) 왜 악인의 형벌을 의인이 받는가?(욥 2:7; 전 7:15; 8:14) 동물은 질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며 인과율이나 도덕적 규범도 없다(욥 39:22). 동물들이 돌림병으로 죽는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질병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다. 당시 사회의 준거점으로 내세운 인과율이 사람에게 돌림병의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의술로는 질병이 어떻게 생기는지 규명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병증을 일으키고 또한 치료하는 분이다(출 4:6; 욥 5:18). 죄를 용서하시듯 질병을 고치신다(시 103:3).

복음서는 더 진취적인 입장이다. 예수와 제자들은 시각 장애인을 두고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답한다(요 9:2).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 운영방식이다(3절). 하나님은 세우고 심으며 뽑고 파괴하신다(렘 1:10). 또한 복을 주시고 징계하고, 상처 입히고 치유하신다. 그의 우주를 다스리는 방식은 알 수 없다(출 33:19).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똑같이 비추시며 의인과 불의한 자를 가리지 않고 비를 내려신다(마 5:45; 욥 38:27). 다만 분명한 것은 돌림병이 저절로 발생하듯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서도 세상을 운영하신다는 명백한 사실이다(욥 38:25).

인간의 자성과 책임: 돌림병은 삽시간에 번져 세상을 공포에 빠뜨린다. 온 세상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다(롬 8:22). 히브리어 데베르는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절망을 반영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시험이다. 더러는 심판이라며 두려워하고, 더러는 범죄 때문이라며 회개한다. 더러는 분노하며 항변하고, 더러는 서로 협력하며 공존을 모색한다. 국경을 넘는 질병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정 종족이나 계급에 대한 심판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고대 세계관에 갇힌 판단이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를 잇는 돌림병은 신앙인으로서 우리 삶의 자세와 함께 사는 지혜를 모으게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자성하며 함께 극복하려는 성숙한 신앙이 요청된다. 우리는 돌림병 앞에서 자발적으로 응답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한다.
출애굽기의 팬데믹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역병의 두려움과 공포는 컸다. 이집트와 바로가 급습한 돌림병에 어쩌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현실은 곧 지금의 우리와 닮았다. 대유행 중인 역병 앞에서 하늘의 은총을 간곡히 요청하게 한다.

김창주 교수  webmaster@kidok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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