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횃불교회 이재희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아브라함과 약속한대로 430년 만에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한다. 애굽에서 빠져나오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신다. 어린양을 잡아 문 좌우설주에 피를 바르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라고 하신다. 이것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방법을 알려주신다.

또 아가서 3장 7절 8절은, 신부를 태우고 오는 솔로몬의 침상 가마가 나온다. 솔로몬 왕은 왕후도 많고, 비빈도 많고 시녀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가마를 타고 올 때, 방해자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의 연, 그 가마를 지키기 위해 60인의 칼잡이들, 칼에 익숙한 훈련된 자, 허리에 각기 칼을 차고 경호하도록 했다.

이 출애굽기과 아가서의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헝리를 동이라고 교훈한다. 첫 번째, 출애굽기은 허리를 동이는 것을 의미한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가야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허리에 띠를 띠고 양을 먹으라고 하셨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마귀와 대적하기 위해,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 곧 애굽인 마귀의 영역인 애굽의 바로 영역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주의 종은 오늘 허리를 동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가 출애굽 시킨 것처럼, 이 땅에 이방인들을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

두 번째,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이사야 32장 11절에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이사야 선지자는 안일한 여자,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다. 이 시대에도 안일한 신앙에 빠진 교회들과 성도들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계시다. 한국교회가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때가 아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차고 안일하게 신앙생활 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해야 한다. 예레미야 48장 36절을 보면, 예레미야 시대에도 제사장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 짓고 우상숭배하며 안일함에 빠지자 다 포로로 잡혀가게 했다.

아모스 8장 10절에도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불의한 광포를 부렸던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들의 기쁨을 희락을 애통으로 바꿔놓겠다고 하셨다. 안일했던 우리에게 코로나로 애통케 하셨다. 이 기간을 빨리 끝내려면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불신앙의 죄(요16:9), 불법의 죄(요일3:4),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한 죄(얍4:17)를 회개해야 한다.

세 번째, 허리를 동이는 것은 사명의 새 삶을 의미한다. 허리를 동이는 것은 일하는 자세이다. 농부는 농사를 짓는 사명,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명, 국회의원들은 정치를 통해 국민들을 섬기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농부가 가을이 오면 열매를 거두기 위해 허리를 동이고 수고와 땀을 흘림다. 기업인들, 직장인들, 정치인들, 주의 종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매를 거두기 위해 허리를 동여한다. 주의 종은 영혼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영혼구원을 위해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 허리를 동임이 사명의 삶을 의미하는데, 반드시 겸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가서 본문을 보면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이스라엘 용사 육십인이 나옵니다. 구약시대 성막의 울타리 놋 기둥이 총 60개였다.(출27:10-15) 성막을 보호한 울타리 놋기둥은 복음적으로 교회를 지키는 훈련된 용사들이다. 이 용사들은 허리에 각기 칼을 찼다. 이 칼은 복음적으로 성령의 검, 말씀이다. 오늘 날 이 시대에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앞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때 겸손으로 사명감을 갖고 허리를 동이고 말씀으로 잘 훈련되어 솔로몬의 가마 즉 교회를 지켜야 한다. 재림 예수님은 신부된 교회, 우리를 데리러 오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진리의 말씀에 칼을 잡고 영적 전쟁에 싸움에 익숙한 자들이 되어있는가? 말씀에 익숙한 자인가? 단련된 자인가? 아니면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기에 서툴진 않은가? 우리는 마귀를 말씀으로 잡아 결박시키고 찔러 쪼개 영혼들을 수술해서 살리기 위해서, 허리를 동여야 한다. 하루아침에 칼잡이가 될 수 없다. 많은 시간, 훈련을 통해서 훌륭한 칼잡이가 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종들은 실천적 훈련을 받는다. 그 훈련 속에 고뇌,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절제하는 법을 배운다. 주의 종은 남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물질 어려움을 당해봐야 물질 어려운 자의 고통을 알고, 내가 아파봐야 아픈 사람의 고통을 알게 된다. 겪어보면서 내 안에 잘못된 것 도려내고 수술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영혼을 살리고 지킬 수 있는 용사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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