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역사는 갈등과 연합을 통하여 합종연횡을 거듭해왔다. 그 중심에는 생존을 위해 먹어야할 음식이 놓여있다. 가뭄이나 홍수 등은 양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하는 변수다. 사람들은 먹거리를 찾아 이주하거나(창 12:10; 룻 1:1), 빼앗기 위하여 힘을 겨루었다(창 26:10). 양식을 획득하거나 보존하기 위해 더러는 위협하거나 연합하고, 더러는 상대와 다투거나 심기를 맞추기도 한다(창 25:34). 고대 근동의 전쟁 또한 날마다 필요한 음식의 지속적인 확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렇듯 역사는 어떻게 채색되어도 떡과 전쟁의 기연불연(不然其然)이다.

떡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레헴(םחל)이 동사 ‘다투다, 싸우다’는 라함(םחל)에서 비롯되었거나 연관된다는 사실은 얼른 납득하기 어렵다. 근동의 아랍어 ‘겨루다,’ 시리아어 ‘연합하다, 맞추다, 위협하다’ 등도 어원상 흡사하다.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르훔(םוחל)은 ‘창자, 또는 내장’을 가리키는데(습 1:17) 음식물이 체내에서 분해되고 흡수되는 과정과 현상을 반영하듯 함축적이다. 한편 명사로는 레헴(םחל)과 밀하마(המחל)가 되어 후자는 싸움이나 전쟁을, 전자는 떡이나 음식을 가리킨다.

성막의 성소에 등잔대와 분향단과 함께 진설병상이 놓여있다. 여기 진설병이 떡 곧 레헴이다. 고운 가루로 구운 떡 열두 덩이를 한 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배열한다(레 25:5-9). 이스라엘 12 지파를 가리킨다. 성소의 떡은 가나안 종교의 제의 음식과 달리 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다. 가나안 전통에 의하면 제단의 음식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물이다.<Torah, 612> 그러나 성소의 떡은 야웨와 이스라엘의 영원한 언약이다(레 24:8). 따라서 둘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곧 이스라엘을 먹이시는 분은 야웨라는 의미다(출 16:15). 성소의 떡은 ‘진설병’(םינפ םחל)으로 표기되었다. 번역에 따라 ‘진설병(陳設餠)’<개역개정>, ‘거룩한 빵’<새번역>, ‘제사 떡’<공동번역>, ‘the table shewbread’ <흠정역>, ‘the sacred bread’ <GNB>, ‘the bread of the Presence’ <NRSV> 등 일관성이 없다.

진설병(레헴 파님)의 핵심은 ‘파님’(םינפ)에 있다. 문자적으로 브니엘(לאינפ)이 하나님의 얼굴이니(창 32:30) ‘레헴 파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떡’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소의 떡은 신의 얼굴, 곧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며 보호하고 함께 한다는 뜻이다(민 6:24-26). 파님은 또한 ‘보이다,’ 또는 ‘내부의’라는 뜻도 있다. 19세기 러시아 랍비 말빔은 떡의 얼굴이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지만 떡의 주요한 기능은 인체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면’을 강조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떡의 외면보다는 영양소를 가리키는 ‘내용’(contents)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면의 떡’이 되어 자연스럽게 영적인 의미 곧 토라와 관련된다.

성소의 떡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얼굴과 신의 현존을 암시하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양식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Houtman, 393> 그리하여 시인은 만나를 하늘 양식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시 78:24; 105:40). 이점에서 성소의 떡은 가나안 제의의 희생제물과 전혀 다른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자가 쟁취하는 전리품이 아니다. 성소의 떡은 하루도 건너 뛸 수 없는 양식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매일 경험하는 신학적 장치가 된다.

더욱이 진설병상에 대접, 숟가락, 병, 잔 등을 둠으로써 음식을 섭취하기 위한 도구들이 소개된다. 떡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동시에 육체의 자양분을 가리킨다. 성소의 떡은 뺏고 빼앗기는 전쟁의 획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인 동시에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다(마 6:11).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 레헴이 요구된다. 하나는 육신의 레헴 빵(םחל)이며 다른 하나는 영적인 레헴, 하나님의 긍휼(םחר)이다. ‘하나님 얼굴의 떡’이 신체에 필수적인 양식이라면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은혜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영적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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