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신학 학장 서헌철 목사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면 대충 벌금형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었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도망을 가라고 권유도 했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마지막 진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떠나갈 시간이 되었다. 각자의 길을 가자.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을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이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것 같다. 인간은 살아서는 육체에 갇힌 존재이지만 죽어서는 육체를 벗어나 영혼의 세계를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영혼의 세계가 바로 저기 있다는 것. ‘코레세스’가 먼저 가 있을 것이라 하면서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킨 것이라 고도 한다.

한번은 정의에 관한 논쟁을 하다가 소크라테스에게 망신을 당했던 ‘트라시마코스’가 길거리에서 ‘소크라테스’와 맞닥뜨렸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냐? 아 좀 우울하다.
우울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기분이 더럽다는 것이야.
기분 더럽다는 게 무슨 말이냐? 에이 몰라.
아 그래도 자네는 좀 낫네, 자네가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은가!
이게 바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다.

계속해서 질문하고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는 것 같으니, 상대방은 짜증 날 법도 한데 철학책을 보면 말꼬리를 잡힌 상대는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귀찮게 구니 아테네 사람들이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고발을 당했는데, 그의 공식적인 죄명은 아테네가 믿는 신을 믿지 않으므로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었다. 재판은 먼저 고발인이 왜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는지를 설명하고 ‘소크라테스’는 왜 자신이 무죄이며, 억울함을 변호하였다.

500명의 배심원들이 1차 투표를 해서 유죄냐 무죄냐를 가리는데 280대 220으로 유죄판결을 하였다. 그런데 2차 투표는 고발인과 피고인이 각각 합당한 형량을 제시하고 이것을 배심원들이 선택 한다. 먼저 고발인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처해야 한다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2차 변론을 하는데,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고 벌금이나 좀 내겠다고 하면 될 상황이었다. 왜냐면 1차 투표에서 근소하게 유죄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배심원들이 ‘소크라테스’ 죄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레테스’는 2차 변호에서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지 너희들은 모른다는 것, 자신은 사실 국가유공자급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등을 말했다. 그래도 뭐 벌금을 내라면 내겠다고 변호를 한다. 그랬더니 2차 투표에서는 360대 140으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1차 투표에서 무죄라고 생각했던 배심원이 220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80명이 돌아서 사형에 투표를 한 것이다. 열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뇌물만 조금 쓰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거절 했다.(출처 : 5분 뚝딱 철학)

우리에게 ‘누가 유죄(有罪)냐?’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작금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곧 죄인들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는(요 11:53, 57 등 참조) 것과 같은 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보면서 ‘소크라테스’의 재판 역시 ‘옛이야기야’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罪惡)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義人)을 학대(虐待)하며 뇌물(賂物)을 받고 성문(城門)에서 궁핍(窮乏)한 자(者)를 억울하게 하는 자(者)로다(암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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