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김명환 목사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닥쳐오는 불행을 남에게 뒤집어 씌운다. 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잘못과 시행착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나의 불행과 잘못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마디로 나의 불행과 잘못을 스스로 받아드리지 못한다. 자신의 불행과 잘못을 누구를 탓하지 말라는 애기다. 자신의 불행과 잘못은 자신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차고 넘쳐서 문제가 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만족함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차고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은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웃의 불행을 나의 불행,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 이웃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이다.

성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 따뜻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교훈이다. 성서는 “저 푸른 들판을 보라”고 했다. 푸른 들판은 인간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가 준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교감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교감 할 수 있는 사람은 청아한 귀를 가진 사람, 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 역사의 흐름을 감지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행복과 불행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한다. 불행은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자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간 모두가 긍정적인 마음, 열린 마음을 지니면 밝은 세상,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인간의 삶도 풍성해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너와 내가 함께사는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혼자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모두가 불행하다. 다툼과 분열만 있다. 예로 삶의 현장서 혼자라고 생각해 보라. 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울림도 없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면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삶의 의미도 없다. 동물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혼자 사는 세상에서 아무리 소리를 쳐도, 허공을 향한 아우성에 불과하다. 너와 내가, 그리고 그가 함께 소리를 낼 때 화음을 낼 수 있다.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은 과거의 시간에 매달려 헤어나지 못한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 가진 것을 지키려고 몸부림친 1달란트를 받은 종과 같다. 게으른 종이다. 하나님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혼자 하나님나라에 가겠다고 소리치기 때문에, 경쟁이 일어나고, 불신이 만연해 진다.

나를 개방해 너를 받아드리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그리스도인의 기도소리는 소음이 되어 버렸다. 행동이 없는 기도는 소음에 불과하다. 허공을 치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인간을 향해 침묵하라고 있다.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말을 안 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다. 말을 많이 해서 후회한다.

말 속에는 이웃을 비방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 사실 인간은 말 때문에 이웃에게 상처를 주고, 이 말은 자신에게 돌아와 불행을 자초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말로만 주여! 주여! 외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행동하는 자, 예수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는 자,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리는 자,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들의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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