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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존재는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함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오수강 목사

성경에 인자의 온 것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함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면 잃어버린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물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불 신자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날에는 모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학설이 등장해 기독교 이외의 종교도 인정해야 한다는 종교 다원주의적인 경향 대두되다 보니 종교 정체성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곤란한 형편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입장으로 만 보면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다 불신세력이라고 치부해 버렸었는데 현대에는 여러 종교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사이는 종교적인 특성을 서로 인정하는 추세이다 보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종교 간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복잡하다. 타 종교인은 구약 기록과 같이 제거 대상인지 아니면 잃어버린 자인지도 의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타 문화권에 대한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님이 세리, 창기에 대해 잃어버린 자라고 한 이유를 새겨보아야 한다. 그들은 같은 유대인이지만 당 시대의 죄인이라는 잣대로 낙인된 사람들이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으로 인정이 취소된 버림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아니면 구원받을 대상으로 여기셨다. 반면 유대교도 중 당시 종교권력가들인 바리새파, 사두개파 사람들 중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등의 사람들에게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여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 시킨 모습을 보게 한다.

오늘날 성경에 계시 된 잃어버린 자들이 누구인지 교회는 알아야 하며, 교회 안과 주변을 살펴서 찾아내야 한다. 강도 만났다가 종교인과 종교지도자들에게 외면당해 다 죽게 된 자, 죄인으로 낙인되어 동족 취급을 받지 못한 세리, 창기 그리고 병든 자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특히 몸의 지병으로 인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격리되어야 하는 기저 질환자들에 대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그 예수님이 세상 오신 이유 즉 교회를 세우신 뜻이 바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그러면 교회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오늘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자들이란? 현재 교회가 선교와 전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들에게 만 국한하고 있지 않은지 염려된다, 실제 우리 주변에는 교회의 관심과 거리가 먼 잃어버린 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교회는 그들을 찾아 영혼은 구원하고 어려움을 해소하도록 위로하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과연 그들이 누구인가? 찾아야 할 대상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일생을 자녀들과 나라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노인들에 대한이야기다. 건강하게 가족과 함께 한 자들이 아니라 기저질환으로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을 해야 하는 병든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병든 노인들은 요양시설에서 외롭게 투병 생활하시는 기저 질환자들이다. 물론 국가 이에 대해 경제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경제문제보다도 이들을 위안하고 보듬어주어야 할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들은 건강을 도둑맞아 한 몸을 침대에 의지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이들은 가족을 도둑맞은 자들이다. 물론 자주 찾아 오는 자녀 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족도 더 많다. 독거노인이 아닌데도 일 년 이 년이 되어도 가족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사실 가족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또한 일평생 일구어 놓은 재물을 도적 맞은 자들이다. 무어 그리 많은 재물을 소유하였겠느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자신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할 뿐이며 더군다나 돈을 모른다.

젊은 시절 쌓아 놓은 학식과 지혜와 삶의 지혜를 모두 도둑을 맞은 자들이다. 몸이 아픈 것 이외에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친구도 도둑을 맞았다. 일평생 가장 가까운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인생 성공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말 찾아오는 친구가 한명도 없다. 일가친척도 도둑맞아버렸다. 사람들의 인식이 자신의 부모도 찾아 뵙지 못하는데 친지를 찾을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사실 한 두번은 얼굴을 보이는 것으로 끝이다. 가령 찾아와도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일평생 자녀손들을 위해 힘들게 살아왔는데 인생 황혼에 남은 시간을 도적 맞은 안타까움이 있다. 남은 날과 시간이 신음하고 고통 중애 인생을 강도 만난 자들은 돌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생명이 꺼져가는 중이며 삶을 강도 맞은 자들이기에 이들이 영혼이 위로를 받아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지금 교회가 해야 할 많은 일 중 가장 시급한 일은 예수님처럼 삶을 강도 만난 자들이 넋 놓고 있는 요양시설, 독거노인, 병든 자를 지나치지 않음이다.

오수강 목사  webmaster@kidok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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