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갖가지 그릇된 행태에 신물이 난 사회가 보낸 최후통첩
프란치스코 교황 효과로 인해 더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2014년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사고 가운데, 기독교와 관련된 것만 추려본다면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한국교회의 민낯,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인한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 등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한국교회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아직 꽃도 채 펴보지 못한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되어 온 국민이 침통에 잠겨 있을 때 터져 나온 한기총 부회장 조광작 목사의 발언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가 이런 사단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천안함 사건으로 국군장병들이 숨졌을 때는 온 국민이 경건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애도하면서 지나갔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러한 발언은 언론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가뜩이나 불쾌한 마음이었던 국민들은 분개하며 일어났다. 뒤늦게 당사자인 조 목사가 잘못을 뉘우치고 해명을 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했다. 오히려 조 목사를 겨냥했던 비난의 화살은 한기총을 넘어 한국교회 전체로 향했다. 심지어 한국교회 스스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유가족을 위한 기도회나 집회를 여는 것까지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한국교회가 제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가 허사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 힘들었다. 목숨을 바쳐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희생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목회자와 교인, 교회, 단체의 노력들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비판을 받는 데에는 조 목사가 내뱉은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보여준 갖가지 그릇된 행태에 신물이 난 사회가 보낸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은 뿔이 단단히 나서 한국교회의 모든 행동에 태클을 걸었다. 결국 무한성장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가 스스로 자처한 일인 셈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노력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종교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한국교회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가톨릭의 수장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면서 극대화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기간 동안 한국교회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개선장군처럼 척척 해 나갔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의 손을 아낌없이 잡아주었고, 때마침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면서 한국교회와 차별성을 강조하기에 열을 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한국교회의 인지도가 더욱 급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바라보면서 본질을 잊은 채 왜곡하기에만 급급했다. 또한 과거에도 그랬듯이 교황의 방한 이후 급감할 교인 수에만 목을 맸다. 일각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반대하는 집회를 성대하게 열고, 국제적인 망신을 스스로 자처하기도 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회개와 각성을 통해 거듭나려는 노력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황의 방한을 방해할까만 생각했다. 한국교회에 남아있던 마지막 기회마저도 스스로 발로 차버린 격이다.

그 결과 가뜩이나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 효과로 인해 더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여기에 여성도 성추행, 배임 및 횡령, 사기, 비인가 시설의 횡포 등 연일 쏟아지는 각종 기독교 관련 사건사고는 그나마 남아있던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마저도 무너트렸다.

이를 설명이라도 하듯이 김재환 감독의 <쿼바디스>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감독은 일부 대형교회의 사례를 통해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판했다. 그동안 건드리지 못했던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다윗의 모습과 같이 통쾌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이들 교회는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기에 몰두했다.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누구보다 싫었던 모양새다. 물론 영화가 한국교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는 생각하기에 무리가 따르지만, 어찌됐던 한국교회가 스스로 회개와 각성을 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만큼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물론 한국교회가 연말연시를 맞이해 소외된 이웃을 향한 나눔과 섬김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칭찬할만하지만, 해마다 해왔던 보여주기식 행사였다는 느낌은 지우기 힘들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본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친절은 오히려 불쾌감만을 조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한국교회의 2014년은 씁쓸함이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향해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은 일부 몇몇 교회나 목회자, 성도들을 제외하고는 낮은자의 자세로 섬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그동안 한국교회의 잘못을 저질렀던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은 씁쓸함이 많은 해가 되길 보다는 흐뭇한 일이 많은 한해가 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스스로 극복하는 원년으로 삼길 바라는 기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가장 기대치가 낮은 해가 된 2015년에 어떤 모습으로 임하는지에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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