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 및 구직 사이트인 ‘알바몬’이 ‘알바가 갑이다’는 광고 시리즈를 내놓고 곤욕을 치루고 있다. 광고 내용 중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입니다. 조금 올랐어요. 370원 올랐대. 이마저도 안주면…”이란 부분이 수많은 자영업 소상공인 업주들이 마치 최저임금과 야간수당을 지키지 않는 악덕 고용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입장에서 볼멘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 급기야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장몬’을 만들어 ‘알바몬’에 맞대응하고 있다.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 애매한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의 청년 실업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이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거 청년들이 기피했던 3D직종마저 관문이 좁아졌다. 갈수록 청년들의 스펙은 높아지는데 이를 뒷받침해주는 일자리는 부족하고, 설령 일자리가 있다고 해도 스펙에 맞는 대우를 받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청년들의 눈이 높아져 일명 3D직종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실제로 3D직종에서도 임금이 비싼 국내 청년들을 채용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조선족이나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결국 청년들은 이런 저런 스펙을 쌓고도 본인이 만족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행태는 기이하게 변형되어 소위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NEET)을 양산해 내고 있다. 흔히 ‘니트족’은 사전적인 의미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15~34세의 젊은 사람을 일컫는다. 취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기에 실업자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족’과는 구별이 된다. 쉽게 말해 이들은 취업을 하려고 백방 노력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결국에는 취업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다. 이들의 증가는 국가 경제의 잠재성장력과 국내총생산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개인적으로도 스스로 가둔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해 훗날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어 사회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들과 함께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정규직을 구하지 못해 우선 당장 필요한 경제적 빈곤을 메우기 위해 활동하는 ‘프리터족’이 늘고 있다. ‘프리터족’은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를 합성해 만든 줄임말로,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앞서 ‘니트족’보다는 경제활동에 적극적이지만, 이는 정규직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마지막 돌파구로 찾는 방법으로 이 또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특히 몇몇 악덕 고용주들의 횡포에 상처받은 청년들은 정규직에 대한 희망마저도 버린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기에 바쁘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일자리 부족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달해있다. ‘갑’과 ‘을’의 관계를 넘어서 계약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다. 그나마 일반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수준은 나은 편이다. 크리스천들의 일자리 구하기는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일반 직장을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거기다가 일반인보다 직장을 선택하는 폭도 좁아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교회로 눈을 돌려도 일자리가 없기에는 매한가지다. 몇몇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이들을 받아줄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설령 받아준다고 해도 일반 직장과 임금차이는 심한 편이다. 몇몇 교회는 신앙심을 빌미로 노동력을 착취한 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저임금을 푼돈 건네듯이 주고 있다. 눈물을 머금고 저임금으로 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칫 돈만 밝히는 교인으로 낙인이 찍혀질까 두려운 나머지 침묵으로 아픔을 삭히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청년들의 미래를 책임질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해당 교회의 교인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도록 일반 직장과 동등한 임금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인이라는 이유를 핑계 삼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노동력만을 착취하는 파렴치한 행태는 금지해야 한다.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의 마음에 상채기가 생기지 않도록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교회적 입장에서나 사회적 입장에서나 ‘윈윈’ 효과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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