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여름은 바캉스 계절이고, 축제의 계절이다. 젊은이들은 무엇인가 추억을 만들고 싶은 생각으로 설레겠지만, 일상과 더위에 지친 이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 복잡한 일들을 잠시 잊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하다. 하지만 삶은 잊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바캉스 기간의 축제는 ‘잊음’으로 신바람 나는 것인데, 잊지 않기 위해서 벌이는 축제도 있다. 유월절이 그러하다. 유월절은 ‘넘어가는 절기’이다. 무엇을 넘어가는가? 죽음에서 삶으로, 예속에서 해방으로, 억압에서 자유함으로 넘어가는 절기이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실 때, 집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로 하여금 넘어가게 함으로써 죽음의 재앙을 피하게 하신 바가 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이 바빌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궁극적인 변화와 역사 변혁의 상징어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어린양의 피는 인류 구원을 위해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각 사람의 깨달음에서가 아닌 기억에 의해 전승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뜻에서 기독교를 가리켜 ‘기억의 종교’ 또는 ‘역사적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애굽기는 유월절에 대해 기술하면서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라고 시작한다. 이렇게 유월절을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아 죄악의 역사, 아픔의 역사 가운데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인생,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자각하였다. 때문에 유월절 축제는 먹고 마시는 축제가 아닌, 자기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벌이는 ‘기억의 축제’인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옛 총독부 건물을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며 철거해버린 일이 있다. 객관적 자료는 없지만, 당시 가장 기뻐했던 이들은 일본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총독부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 내렸는데, 그런 물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말 절개 있고, 뜻을 지닌 민족이라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기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 역사는 창조하는 것이 아닌 기억을 통해 축적하는 것이다. 금년은 해방 70주년임과 동시에 분단 70주년이기도 하지 않은가. 유난히 폭염이 계속되는 이 여름, 저마다 즐기는 바캉스가 잊기 위한 축제만이 아닌 기억하기 위한 축제도 되었으면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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