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곳에 깨끗한 양심이 거할 수 없습니다. 또한 깨끗한 양심이 없는 곳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이 순수한 믿음이 없는 곳에 순수한 사랑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그 마음이 깨끗하며 목적과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딤전1:5) 이라고 말하면서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반대되는 말로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감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는 얼굴이 두껍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피부가 두껍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심이 죽었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의미이며 하는 일에 그 목적과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고 청결하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조상 때부터 청결한 양심으로 주님을 섬겨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처음 보셨을 때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청결하고 순수하다, 착한 양심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4장 16절에서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3장 1절에서는 공회 앞에서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양심에만이 올바른 믿음이 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는 장로의 자격에 대해 말하면서 ‘깨끗한 양심의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딤전3:9)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양심은 선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고 침례에 대해 말할 때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1)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침례도 근본적으로 우리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양심이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버릴 때는 믿음도 파선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양심이 더러워진 이후의 신앙생활에는 외식이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선한 양심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으며 양심에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속 다르고 겉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외식입니다. 반면 순수하다는 것은 겉이 그러하면 속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선한 양심을 가졌다는 것은 겉과 속이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속과 겉이 같은 선한 양심을 가진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여야하는데 싸움의 도구는 믿음과 착한 양심입니다. 믿음과 양심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양심이 파괴되면 도덕적 부패와 함께 영적 파멸까지 초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양심이 파괴되면 믿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믿음의 파멸을 막기 위해 성령으로 거듭난 양심과 진리인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파선을 당하지 않게 위해서는 이단적인 교리나 그릇된 교훈에 대한 경계가 있어야 하며 그 교훈이 우리를 믿음가운데로 인도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날 솟아져 나오는 수많은 교훈들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온전한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는가를 따져봐야 하며, 나 자신으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하시고 온전하시며 기뻐하신 뜻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가를 설펴보아야 합니다.

주사랑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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