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광복 70주년 기념 연휴기간에 시청한 <마지막 심판-엄마여서 미안해!>의 이야기로 시작한 주일설교는 나름 심혈(?)을 기울였고 은혜도 있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는 수요 정기시위에 다녀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실은 그 집회를 주관하는 단체나 성격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면도 없지 않았으나 꼭 한번은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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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로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한 목소리로 호소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시위라는 것 정도다. 수요일 오전 서둘러 집을 나서 불광 동 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안국 역 6번 출구로 나섰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준수한 젊은이와 나란히 길을 걷는 중년부인이“일본 대사관이 어디예요?”하고 길을 물었다. 너무 반가워서“수요 집회에 가시나요?”하고 되물었다. 이 시간에 그 쪽으로 가는 사람은 모두 수요 집회 참석자이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찾아간 일본대사관 건너편에는 노란 색 테이프로 제한구역이 표시되고 적잖은 경찰들이 둘러서 있는 모습이 조금은 살벌함을 느끼게 했다. 지난 수요일 시위 중 80 노인 한 분이 분신을 하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었지만 조금은 궁색하게 들렸다. 시위를 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말인가?‘좀 심한 것 같다.’는 항의 아닌 항의를 했더니만 공무집행방해를 하지 말라며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꽤나 높으신 분은 거기도 어김없이 있었다.

시위의 효과를 더할 양으로 특수 제작했을 작지 않은 피켓을 목에 걸고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이름 모를 영감님은 140일째 일인시위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아베총리를 성토하는데 열을 올렸다. 일본에서 관광차 서울에 왔다가 여기를 찾게 되었다는 대여섯 일본 여성들이 평화의 소녀 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를 주관하게 된 수원목회자연대의 회원인 목사 남편을 따라 나섰다는 사모의 반가운 인사도 받았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 다녀갈 계획이었는데 들키고 만 것이다. 집회순서지를 나누어 주면서 혹시 자유발언을 해 주시겠느냐는 물음에 그럽시다! 쉬운 대답 한마디가 단순한 참석자를 순서 담당자로 바꾸어 버렸다.

<정대협>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노란색 자켓을 입은 젊은이들이 땀을 흘리며 봉사하고 있었다. 12시가 가까운 때, 평화의 소녀상 옆에 마련된 의자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길원옥(88) 두 분 할머니께서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심으로 시위는 시작되었다. 순서에 따라서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상임대표로 소개된 윤미향 씨는 "광복 70주년도 우리에게는 진정한 광복이 아니었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한국과 일본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날 집회는 제1192차 시위였다. <정대협>이라는 단체 이름이 시위와는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일본군‘위안부’로 용어의 통일을 기하자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라면 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인데 시위를 주관하면서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또 하나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는 정부 관계자의 태도나 시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서 정부를 지나치리만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시위의 본질과 달리 마치 반정부 시위처럼 비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이날 시위를 주관한 수원목회자연대 측 대표로 나서서 인사말을 전하는 그 분의 메시지 역시 타도 아베신조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정부공격으로 일관하였다. 반면에 멀리 강원도에서 왔다는 초등학생의 애교 넘치고 재치 있는 말솜씨는 시위 꾼들로부터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고, 용돈을 줄여서 모금했다는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기림비를 세우고 그 현장에서 모금한 돈이라면서 할머니들께 전달할 때는 가슴 뭉클한 감동도 있었다. 소개를 받고 나선 나는 많은 시름으로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로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계신 두 분 할머님께“이제야 와서 미안합니다.”하는 죄송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무릎을 꿇어 큰 절을 올렸다. 47명! 생존해 계신 우리 할머니들의 깊은 한이 풀어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게 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100여명의 초·중·고등학생을 비롯해 총 350여 시위대원들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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