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기드온의 고사가 있다. 기드온이 장수가 되어 싸움터로 나가게 된다. 소심한 그는 어떻게든 많은 장정을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장정의 수를 줄이라고 하신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장정의 수를 줄이고 줄인 기드온은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 개처럼 물을 핥아 마시는 자를 제외하고 손으로 떠서 마시는 자 300명만을 선택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병장기가 아닌 심리전을 하도록 하신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적진에 침투한 자들이 일시에 훼불을 밝히며 “여호와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 이렇게 함성을 지르자, 미디안 병사들은 자중지란이 일어 서로 찌르며 국경 너머까지 도망친다.

기드온은 영웅이 됐다. 그런 기드온을 향해 백성들은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 8:22) 라고 아첨한다. 백성들의 이 같은 요구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당시 지파동맹의 정신은 권력의 세습을 원천적으로 금했다. 다행히 기드온은 겸손했다.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지불식간에 백성들이 그릇 행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으로 제사장이 입을 때 걸치는 에봇을 만들어 성읍 오브라에 모셔 두었는데, 백성들은 그것이 마치 신비한 효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음란하게’ 섬겼다. 게다가 기드온은 너무나 많은 것을 누렸다. 아내가 많아서 아들들이 무려 칠십 명이나 됐다. 기드온이 죽은 후에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 행세를 하며 이복형제들을 모두 살육하는 참극을 벌였다. 기드온은 자식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음에도, 자식들에게 과분한 영화를 누리게 한 결과, 자기가 죽은 뒤에 자식들이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권세, 영화로움, 부 등의 세습은 모두 죄악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공동체의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인간이 대물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혁교회 가운데 특히 장로교 신앙의 핵심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바로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는 삶이다. 인간은 노력할지라도 그 행위의 결과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고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는 행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위임받은 것을 세습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럼 갖가지 지능적인 방법으로 큰 교회를 세습시키는 것은 어떨까?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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