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 참된 복음의 능력

가짜 기독교 사교집단의 교주 유병언은 수 천 명을 이끌던 영적 지도자였던가? 가짜 기독교와 예수님의 참된 지도력과를 비교해 보라. 무엇이 참된 기독교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성경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을 따르면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여왔다.

예수님은 유대주의자들의 허망한 종교행태를 철저히 파헤쳤다.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는 헛된 선민의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든 남자는 난지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이것이 특별한 언약의 상징이라 해서 긍지를 가졌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성전을 가장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다윗 시대에는 율법을 준수하기 위한 수많은 제사장들과 약 2만 여명에 이르는 레위지파 남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순서대로 성전의 사역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복음을 제시했다. 회당제도를 중심으로 재편된 유대주의가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파, 열심당 등으로 분파를 이루어 유대인들 사이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로마의 지배하에 살던 유대인들은 새로운 다윗의 출현을 통해서 정치적인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메시야” 즉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왕가의 후손이 오실 것을 절실히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다. 친히 제물로 바쳐지는 삶을 선택하셨다. 홀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형벌에서 해방시켰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시고 불쌍한 자들을 위로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 버림받은 여성들을 구해 주시고 살려주셨다. 자식들이나 가족이 죽어서 눈물짓는 가정에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은 두벌 옷을 가지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았다. 학대와 멸시를 참으시고 마침내 부활로 승리하였다. 예수님께서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이겨내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도 동일한 능력을 불어넣으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어서 모든 생활에서 죄를 이기고 능력있게 살아간다.

그러나 구원파 집단은 철저히 교주 유병언 일가의 이익만을 위해서 교회조직을 악용하였다. 사고의 수습과정에서도 이들 사교집단은 철저히 비협조적으로 은폐의 장막을 쳤다. 아직도 핵심관련자들이 도망을 다니고 있다. 한국의 법적인 체계를 객관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집단이 되어서 건전한 판단과 정의로운 규정이란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일로 인해서, 남북 분단의 긴장과 군사적 대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성적으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는데, 이제 한 가지 더 큰 고통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 자살율과 우울증의 가파른 상승

지금 현재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어떤 진단을 하는가에 따라서 사람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행한 현실의 해결책이 전혀 없다고 절망하면서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정행위에 대한 책임, 치명적인 질병, 극한의 빈곤상태, 학업성적에 대한 비관, 사랑의 실패로 인한 불안 등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되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려 하는 것이다.

가롯 유다가 선택한 자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선생님을 배신하고 난 후에, 깊은 후회에 빠졌다. 왜 그런 결정을 했던가? 죄가 없으신 분을 팔아넘기는 짓을 했던가? 가롯 유다는 자기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모함하며 증오하는 자들에게 동조하여 자신에게 출세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깊은 후회와 반성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고,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나 잘못한 제자들이 어디 한 두 명이었던가! 베드로도 역시 예수님을 전혀 모른다고 저주하면서 세 번 씩이나 부인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므로 써 한 순간의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예수님 앞에 돌아오면 된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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