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희 신 목사
가을이 깊어 가면서 사람마다 붉게 물든 가로수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 본다. 예전엔 신작로 사이로 쭉 뻗은 포풀러나무의 운치 있는 단풍이 일품이었다. 특히 노랗게 물든 가로수를 뒤로하여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자동차 모습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정경이다. 이제 농촌 어느 곳에 가도 가을의 이 같은 모습은 볼 수 없다.

어딜 가도 검은 아스팔트 도로와 운치 없는 가로수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이 같은 가을 정서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이미 계절의 감각을 상실한 멋없는 가로수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푸른 잎사귀라도 보여 주면 다행이다. 시커멓게 매연가루를 뒤집어 쓴 채 볼썽사납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되레 보는 이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한다. 가을의 정서를 잃은 도시인들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독서일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틈틈히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는 재미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카페에서 커피잔을 기울이며 명상집을 읽는 여유도 즐겁다. 시간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할수록 독서는 더욱 필요하다.

가을은 모든 것이 여무는 시기다. 사람들도 곡식처럼 생각이 여무는데 필요한 자양분을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9월을 독서의 달로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변화무쌍한 시대에는 앞서 살다 간 사람들의 지혜만큼 좋은 답이 없고, 풀리지 않던 문제도 우연한 글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독서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모든 휴식시간을 TV와 스마트폰에 뺏긴 현대인들의 마음은 마치 공해로 오염된 도심의 가로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삶의 공해에 찌든 마음이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 맑고 깨끗하게 물든 단풍의 색깔 같은 투명한 정서가 갈수록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기독교인이라 해도 그의 마음속엔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이 없다. 투박하고 거친 말부터 잔뜩 찌뿌린 얼굴 표정까지 그리스도의 사랑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정서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엔 기독교 정서가 듬뿍 담긴 도서가 없다. 너도 나도 읽고 싶고 함께 그 내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은 기독교 베스트셀러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정서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다. 말씀은 있지만 감동은 없다.


십자가 탑은 높아가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기독교와 멀기만 하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기독교인들이 교회로부터 와르르 떨어져 나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예장 통합피어선 총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