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사람마다 풍성한 결실을 위해 분주하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삶을 어떻게 운영해야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김창주 목사(한신대)의 요셉 이야기가 흥미롭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더하다’ ‘모으다’라는 뜻이란다. 요셉은 자신의 이름처럼 덧셈-뺄셈의 연속이었고 나눗셈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덧셈-뺄셈은 마침내 곱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따라가 본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은 +이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는 꿈은 아마도 ++로 표기할 수 있다. 이후 요셉의 셈법은 돌연 – 모드로 바뀐다. 형들은 그를 구덩이에 빠뜨리고 이집트로 팔아넘긴다. 이 때 요셉은 – –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의에 빠진 뺄셈 가운데 반전이 기다린다.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가 된 것은 그에게 희망의 덧셈이다. 이때 덧셈은 아쉽게도 금세 뺄셈으로 바뀐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자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분명 덧셈에 해당하지만, 요셉에게는 뺄셈이 되어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된 것이다. 요셉의 상황은 더 나빠져서 마침내 트리플 마이너스에 빠진다. 요셉의 인생은 단지 마이너스로는 부족하고 음부의 삶처럼 그의 존재가 부정된다.

그렇다면 요셉의 덧셈은 언제 이뤄질까? 요셉은 수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한숨짓지 않는다. 왜 그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한숨을 짓지 않았을까? 요셉은 마이너스를 마이너스로 인정하는 플러스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도 요셉은 성실과 근면으로 동료와 상관에게 인정받고 마침내 꿈 풀이를 통하여 이집트의 총리가 된다. 요셉의 셈법이 덧셈으로 확인된 순간이다.

요셉에게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그렇지만 배반과 유혹, 망각이라는 뺄셈을 초월하는 덧셈의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앙인의 삶은 약간의 손실이 있더라도 그 일에 매몰되지 말고 덧셈이 되는 결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만일 내가 요셉이라면 무엇을 모으고 어떻게 더할 것인가? 내가 씨를 뿌린다면 무엇을 뿌리고 어떻게 거둘 것인가? 무엇보다 하나님 경외하며 어떻게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뺄셈을 뛰어넘는 결과를 확신하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인은 뺄셈뿐인 환경에서도 요셉처럼 믿음의 덧셈을 실천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가을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결실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삼일교회 담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