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창 훈 목사
21세기 목회를 미리 예견한 학자들의 책을 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을 한다. 현대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지식의 발달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하는 단계에까지 왔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지식으로만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말로만 듣는 은혜,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영적으로 직접 느끼고, 마음에 직접 감동을 받고,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은혜들을 직접 눈으로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21세기 목회는 성령이 운행하시고 일하시는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교회와 목회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사와 이적을 인정하고 또, 기적의 역사를 부인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의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축복이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어떤 신앙, 어떤 사람에게 기적이 따르는지 찾아보도록 하자.

첫째,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이 따른다. 본문 말씀 1절에 보면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 갈 새’ 그랬다. 구약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온 백성들이 다 기도했다. 특별히 예수님이 사도로 택한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서 살아 있는 기도와 철야기도를 하고 또 오순절 성령을 받고서도 여전히 기도시간에 성전에 가서 기도했다. 이것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게 한 밑거름이다.

당시에 활동했던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보다 세상적으로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신앙적으로 특별히 훈련을 받은 자들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들이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고 그들이 정해진 기도시간에 하루 3번씩 기도하다가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다가 풀무불속에서 타지 않고 걸어 나오는 기적을 체험했고, 사자 굴에 들어가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그냥 걸어 나오는 기적을 체험했다. 초대교회의 기적도 사도행전 1장 14절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기록한 말씀대로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누구든지 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적이 따르는 사람이 된다.

둘째, 긍휼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기적이 따른다. 본문 말씀 4절에 보면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그랬다. 이 말씀은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라 불쌍한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유심히 쳐다보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어떤 사람과 더불어 일하시고 그로 하여금 기적을 나타내게 하신다. 우리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런 자를 통해서 기적을 일으키게도 하시고 삶에 기적을 체험하게도 하신다.

셋째,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에게 기적이 따른다. 본문 말씀 6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랬다. 베드로가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불쌍한 마음으로 쳐다보더니 그 다음 행동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더니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서 걷고 뛰면서 성전으로 들어갔다. 이 얼마나 기쁜 기적의 현장인가? 이 얼마나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기적의 사건입니까? 베드로 사도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은 믿음으로 행할 때 일어나고 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에게 일어난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우리 예수님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항상 기도하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할 때 기적이 따르게 될 줄 믿는다.

동아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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