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인도의 여자들은 남편이 많은 처를 거느리고 그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자가 남편의 뒤를 따라 죽게 되어 있어서, 그 여자들은 각각 다른 여자를 물리치고 그 특전을 얻는 것을 일생의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여자들이 남편을 위하는 친절의 목적도 실은 남편의 죽음의 벗으로 선발된다는 보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남편이 죽으면 그 과부는 만약 희망한다면(사실 희망하는 자는 거의 없는데-) 집안 일의 뒤처리를 하기 위l하여 2~3개월의 유예를 청구할 수 있다. 그날이 오면 그 여자는 말을 타고 결혼식 때처럼 화장을 하며, 그 여자의 말대로 마치 이제부터 남편과 함께 자러가기라도 하듯이 즐거운 표정을 하곤, 들뜬 군중을 거느리고 쾌활하게 걸어서 이윽고 이러한 구경거리를 위한 공적 장소에 도착 한다.

그곳은 커다란 광장이며 한복판에 장작을 가득히 쌓아 올린 구멍이 파 잇고 이에 잇따라 4~5단의 높은 언덕이 잇어, 그 여자는 거기로 인도되고 뒤이어 호화로운 식사가 나온다. 식사가 끝나면 그 여자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한다. 그리고 그 여자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시각에 장작에다 불을 붙이도록 명한다. 불이 붙으면 그 여자는 아래로 내려가서 남편과 가장 가까운 친척의 손을 잡고 함게 근처의 강으로 가, 완전히 나체가 되어 보석과 의복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마치 자기의 죄를 씻기라도 하듯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1:19)

물에서 나오면 길이 14자의 황색의 천에 몸을 싸고, 다시 남편의 친척의 손을 잡고 예의 언덕으로 되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어린애가 있으면 모두에게 부탁한다. 구멍과 언덕 사이에는 대게 막을 쳐놓아 타오르고 잇는 불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잇다. 개중에는 아주 용기 잇음을 보이기 위해 그 막을 거부하는 여자들도 잇다. 그 여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고 나면 한 여자가 머리와 전신에 칠할 기름이 가득히 든 단지를 내민다. 그 여자는 그것을 칠하고 나서 그 기름을 불 속에 던짐과 동시에 몸도 던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위에 계속 장작을 던져 그 여자의 죽음이 지연되지 않도록 해 준다. 그리고 그 때까지의 그들의 즐거움은 한탄과 슬픔으로 바뀐다. 그리고 만약 신분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인 경우에는, 유해는 매장될 장소로 운반되어 거기에 앉은 채로 놓여지고 과부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세게 그를 껴안는다. 그래서 그대로의 자세를 하고 있는 동안에 모두가 그들의 둘레에 벽을 쌓는다. 그것이 그 여자의 어깨 높이에 달하면 그 여자의 뒤에서 머리를 누르고 목을 조인다. 그 여자의 숨이 끊어지면 벽은 다시 높게 쌓여지고 닫혀져서 두 사람은 그 속에 매장된다.(출처 : 몽테에뉴 수상록. 손석린 역. 서문당. 1972. pp121-124)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1:19)

인간 세상에 참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며, 불행한 삶은 무엇을 두고 말할까요? 그런데 인간은 종교성으로 인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인권 곧 최소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누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행, 불행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어떤 목적에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종교나 애국 애족이란 미명하에 자행됨을 볼 땐 참으로 참담함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맹신적인 종교관에 매몰되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망각하고 자행되는 비참한 일들? 그런데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서 맹신적인 종교관과 같이 맹목적 편향성을 보이는 현실을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맹신의 종교와 맹목적인 편향성 등과 같은 맹종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불행의 씨앗이 될 뿐임으로 맹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