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요즘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전쟁 포고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좌파들이 쓴 교과서가 아닌 ‘올바로’ 쓴 ‘국정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뭘 말하는지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싸움이 치열하다. 나라가 두 쪽 날판이다.

유다왕국이 혼란스런 정국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때이다. 그 어디에도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답답한 때에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의 큰 꿈을 꾼다. 장차 이뤄질 나라는 낡고 병든 다윗 왕국의 심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메시아 왕국의 꿈’이다(사 11:6-8). 발칙한 꿈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만큼 큰 업적을 남긴 왕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이스라엘 신앙의 역사는 다윗에 대해서 곱게만 보지 않는다. 다윗을 메시아의 모델로 삼고, 역사의 귀결을 다윗 왕조의 완성으로 보려는 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윗을 비롯한 제왕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이 더 지배적이다. 이사야는 바로 다윗을 비판적으로 보는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심판하여 끝장내고, 그 베어버린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시대가 흘러 요한 역시 메시아의 꿈을 말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의 꿈이다. 신이 친히 육신을 지닌 사람이 되셨다는 것인데, 이는 자기 오류를 부정하는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 즉 ‘신들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미묘하기는 하지만,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관점과 요한의 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통치’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를 꿈꿨으나, 요한은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이사야는 ‘통치’(Government)에 대한 이상을 지녔고, 요한은 ‘새로운 존재’(New-being)에 대한 이상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사야는 통치자가 달라질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요한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열심히 외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이름으로 고약한 짓을 하기도 한다. 통치자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각 사람이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르는 게 바로 이것이다. 나라를 두 쪽으로 편 가르면서까지 역사책에 아버지를 ‘민족중흥의 아버지’로 기술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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