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고 거산 김영삼 장로님은 서거하시기 몇 주일 전 한 호텔에서 가진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서 길 떠나실 것을 예견이라도 하셨던지“찬송가를 함께 불렀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평소에 즐겨 부르시던‘나의 갈 길 다가도록예수 인도하시니’를 함께 부르신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과의 마지막 만찬이 될 것임을 직감한 자녀들이 그가 직접 부른 이 찬송가를 녹음해 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마지막 시간을 어찌 지냄이 좋은가를 생각해 본다. 찬송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좌우명처럼 기억하시던 말씀“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이사야 41:10)는 말씀도 암송하셨다니 그분의 평상심이 어떠했던지 그것을 가름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 분은 대통령이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이셨다. 거산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서 충현교회(역삼동)의 장로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담임목사는 취임식에 앞서 상도동 자택에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나서 목사의 안수기도를 받은 후에 집을 나섰다고 회고하는 것만 보아도 반듯한 장로의 자세를 겸비하고 있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외국 순방 중에도 주일 예배를 거르지 않았다니 모든 크리스천 공직자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나라 노인들은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는데 88세면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복 받은 사람의 길을 가셨으니 다행이라 여겨진다. 지난 19일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이날 오전 0시 22분, 88세의 나이로 다사다난 했던 세상살이를 접고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그 마지막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 거산 김영삼 대통령님은 신실한 장로로 보다는 신념 있는 정치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약관 27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9선 의원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대통령으로 살다가 떠나셨으니 어찌 안 그러겠는가? 허나 그 분은 당시 충무로 충현교회에서 집사를 거쳐, 장로직분에 임직한 제대로 된 장로셨다. 이름 있는 정치가로서 유명세를 탄 함량미달의 장로가 아니라 장로교회의 법과 절차에 따라서 평신도 리더의 자리에 세움을 받았으니 높이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그분은 아주어린시절부터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곱게 성장한 크리스천이었다. 호적상 27년 12월20일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어장주 부친 김홍조 장로와(2008년 작고) 60년 9월 어느 날, 간첩에게 피살되신 모친 박부연 님의 3남5녀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친의 참담한 죽음은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자리매김하게 한 동기요, 원인이 되었으리라. 소년 영삼은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집에서 2㎞쯤 떨어진 외포리 장목간이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 과정을 마치고, 장목면소제지에 있는 장목국민학교 5학년으로 옮긴 후부터 집에서 학교까지 황토길 20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통학을 한 까닭에 걷고 달리는데 이력이 붙었단다. 또한 스포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통영군 관할 초등학교 대항체육대회 때는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하였다니 그분은 인고의 정치판을 능히 견딜만한 기초체력을 타고난 게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동래에 있는 동래중학교에 진학시험을 쳤으나 낙방했고, 이듬해 인근 통영중학교에 입학하여 역시 뛰어난 운동실력을 인정받아 수영선수로 뽑히기도 했고, 일본소년인 반장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퇴학위기까지 갔었다는 일화는 그의 강한 의협심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 평가하면 지나친 것일까? 해방 이듬해인 46년에 편입학 시험을 거쳐 부산 제2중학교(현 경남중) 3학년에 편입한 보통소년 영삼은 하숙집 책상머리에‘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 쓴 종이를 붙여두고 대통령의 꿈을 키웠고, 그 꿈대로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이 되었으니‘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그 분은 대통령이 되면서“저는 상도동에 집 한 채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물러나더라도 옛날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도동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약속했을 때,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어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약속을 지켰고, 그 집에서 아내 손명순 권사와 함께 살다가“그가 갈 길을 다가도록 인도하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영원한 나라로 떠나가신 고 거산 김 장로님을 환송한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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