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페르샤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하여 포로가 된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투스’가 자기 딸이 포로가 되어 노예 복을 입고 물을 길어 오기 위해 그의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주위에 있던 그의 친구들이 모두 울부짖는데도 그는 땅바닥을 응시한 채 말없이 꼼짝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자기 아들이 또다시 죽음의 길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하 중의 하난가 포로들 속에 섞여 글려가는 것을 보고 머리를 감싸 쥐고 대성통곡하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최근에 우리나라 황태자 중의 한 분에게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황태자(샤를르 듀 규이즈)는 트리멘트(이탈리아의 북부도시)에 있을 때, 자기 집안의 지주9支柱)요 영광인 맏형의 부음(訃音)을 듣고, 또다시 바로 제2의 희망이던 동생의 부고(訃告)를 받고도, 이 충격을 모범적이고 굳건한 마음으로 버티어 나갔지만, 며칠 뒤에 그의 신하 한 사람이 죽으니까 이 마지막 충경에는 그만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그가 이 마지막 타격에 비로소 마음이 상처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인즉 그는 깊은 슬픔에 젖어 있던 터에 충격이 덮쳐오자 그만 그의 참을성의 한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만일 이 이야기에 다음 이야기를 첨가히지 않아도 똑같은 판단이 내려졌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캄비세스’가 ‘프삼메니투스’에게 어째서 그의 아들, 딸의 불행에는 마음이 격하지 않고 친구의 불행에 대해서는 참지 못했느냐고 묻는 말에, “친구의 불행은 눈물로 마음이 표현되지만, 전자의 두 경우는 마음속을 표현할 모든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저 고대 화가의 착상도 이러한 경우와 비슷할 것이다. 그는 ‘이피게니아’가 희생되는 장면에 참석한 인물들의 표정을 각자가 이 죄 없는 아름다운 소녀의 죽음에 대하여 갖는 관심의 정도에 따라 그의 예술의 극치를 다하여 그렸지만, 그 소녀의 아버지를 그리는 마당에서는, 모든 기교를 이미 다 탕진하였기 때문에 단지 얼굴을 가리고 잇는 모습 밖에 그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그 이상의 슬픔을 표현할 길은 도저히 없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인들은 저 가련한 어머니 ‘니 오베’가 아들 일곱을 잃고 또한 계속 일곱의 딸을 다시 잃었을 때 그 가혹한 참변을 이기지 못해 그만 그 모습이 바위로 변해버린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그녀는 슬픔 때문에 화석(化石)이 되었다(오비디우스 <베타도르 포세스> 4의 151)] 이것은 우리의 힘으론 어찌할 수도 없는 사건에 압도당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멍청하니 말문이 막히고 귀가 멍멍하도록 넋을 잃게 될 때의 심정을 묘사한 것이다. 진실로 슬픔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의 혼백이 몽땅 뒤엎어지고, 그 기능의 자유를 잃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몹시 불길한 소식을 듣고 놀랐을 때 몸이 얼어붙고 모든 동작이 오그라붙었다가 눈물과 통곡을 토해내면 설움이 단번에 터져 나와 묶였던 마음과 몸이 풀려 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출처 : 몽테에뉴 수상록. 손석린 역. 서문당. 1972.)

목전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두 눈이 뽑혀져 사슬에 결박당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처지의 ‘시드기야’는 백성들을 위한 가슴속 눈물이 있었을까? 친구, 백성들이 죽어가도 무엇이 눈물을 말려 버리기에 우리사회는 몰인정이 깊어갈까?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라는 말이 회자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 주위에 백성들의 아픔을 보며 통곡의 눈물을 흘리는 지도자가 얼마나 있을까? ‘디오게네스’는 아니지만, 화석(化石)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진정 “뜨거운 눈물이 있는 사람 어디 없소?”하고 두리번거려 본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 11:3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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