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예수님께서 초림 하신 시기에 세례요한에 가려져 한 발 무러러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선택받은 구약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엘리사벳, 요셉, 마리아, 여선지 안나(눅2:36-39),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등이 있는가 하면, ‘네로’통치시기에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으며, 여기에 코린투스(고린도)의 고위 관리였던 ‘에라스도’, 마케도니아(마게도냐) 사람 ‘아리스다고’, 바울에 의해 회심하고 동료가 된 에페수스(에베소) 사람 ‘드로비모’, 바사바라고 불리는 ‘요셉’, 다마스쿠스(다메섹)의 감독이었던 ‘아나니아’, 70인에 속한 사람들 등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순교한 인물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제자로 유명했던 ‘디모데’도 두 번째 박해 기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디모데’는 에페수스(에베소)의 감독으로서 AD97년까지 교회를 위해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카타기고온’이라 불리는 축제를 준비하던 이방인 행렬을 만났지요, 그 대 ‘디모데’가 그들의 어리석은 우상숭배를 심하게 나무라자 그들은 크게 격분하여 그를 몽둥이로 무섭게 구타했습니다. ‘디모데’는 이때 입은 상처로 이틀 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천성이 잔인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먼저 친형제를 살해한 뒤에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두 번째 박해를 시작했다. 그는 분노에 가득 차서 로마 원로원의 일부 의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중 일부는 원한 때문에, 나머지는 자산을 몰수하기 위해 죽인 것이다. 그러고는 다윗의 혈통에 속한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했었습니다. 이러한 ‘도미티아누스’ 학정 시기에 순교한 했음에도, 우리의 관심사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당시 예루살렘의 감독 ‘시므온’(눅2:22-35)과, 다마스쿠스(다메섹)의 감독이었던 ‘아나니아’와 같은 그래도 성경속의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성경에 기록이 없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순교한 수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펄펄 끓는 기름통 속에서 살아남아 나중에 파트모스섬(밧모섬)으로 유배당해그곳에서 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만, ‘시므온’(눅2:22-35)은 두 번째 박해 때에 십자가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교회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로마 원로원 의원의 딸이었던 ‘플라비아’도 폰투스(본도)로 유배를 당하는 등, ‘도미티아누스’ 집권기에 재판소에 글려 나온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법의 제제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인을 해치기 위해 온갖 이야기가 날조되었습니다. 예컨대, 로마 어느 지방이든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지진이 발생하면,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렇게 견디기 힘든 박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밀고자가 늘어났으며, 이익에 눈이 먼 자들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미티아누스’는 그리스도인을 재판관 앞에 세울 때는 그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하게 했고 이를 거부하면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백”해도 동일한 선고가 내려졌으니, 과연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무엇이었을까요?(참고 : 순교자 열전)

성탄을 앞에 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 하며, 어떠한 것을 진리의 삶이라고 할까? 권력에 아부하고, 돈에 비굴하며, 하나님의 명령 보다는 힘 있는 자의 말을 더 두려워하며, 참을 참이라 말하지 못하고, 거짓을 거짓이라 말하지 못하고, 손을 비벼대며 참을 거짓이라 말하며, 거짓을 참이라 외치면서 은혜를 주창하는 우리는 과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음을 마다하지 아니한 순교자들 앞에서 호사가(好事家들에 지나지는 않은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各各)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肢體)가 됨이니라(엡 4:2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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