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음부에 내려가사’라는 사도신경의 내용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라틴어 원문에 들어있는데, 한국어 번역본에 생략되었다”
“종교개혁 498주년에 즈음하여, 사도신경 원문을 복원시켜서 사도적 신앙을 따라 믿음의 고백을 드릴 것을 제안한다!”

필자는 2015년 종교개혁주간에 한 세미나에서 그리스도의 지옥강하 교리를 연구하여 발표하였다. 한국어로 번역된 “사도신경” (The Apostles’ Creed)에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에서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며”로 간략하게 되어있으므로 문제점을 토론하고자 한 것이다. 이 구절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핵심내용을 정밀하게 열거하는 문구들이다. 그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구속사역의 상태와 상황과 성격들이 들어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시고, 죽임당하시고, 장사되시고,” 그 다음에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며” 가 합당한 번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번역서에서는 모든 내용이 다소 축약된 형태로 번역되었고,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구절은 생략되어 있다. 최근 몇 주간 동안 논쟁을 통해서, 필자는 이 구절의 회복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앞에 다시 제안하고자 한다. 원래 사도신경의 내용대로 그대로 번역해서 한글 본에서도 온전한 사도들의 신앙을 따라서 고백하자. 그리고 이 구절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고, 성숙한 이해를 갖게 되기를 원하면서 다음 부분의 해설을 첨가하고자 한다.

유오디우스 주교 (Bishop Euodius)는 그 당시에 상당히 보편적이었던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한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후에 음부에 내려갔다면 그동안에는 무덤이 비어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변하면서, 영적인 해석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즉, 노아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기 이전에 지니신 선재적 존재의 형태로 가셔서 설교했다는 식으로 베드로전서 3장 20절을 해석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자신이 벧전 3장 19절의 해석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왜 노아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설교의 대상으로 언급되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질문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약시대로부터 수없이 많은 의인의 무리들, 그들 중에는 선지자들, 족장들, 야곱, 욥, 등등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어거스틴은 예수님이 내려가셨다는 구절을 매우 영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의 영역에 내려가셨다는 것은 아담 이후에 구원한 자들을 건져내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약시대 구원받은 성도들은 아담, 셋, 노아, 아브라함과 그 외의 족장들, 선지자들은 고통에서 놓임을 받았다.

누가복음 16장 26절에 보면,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는데, 부자는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다”는 구절을 생각해서 지옥 강하 교리를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아브라함의 품이란 결코 지옥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가셔서 모두를 구하셨다거나 일부를 풀어주셨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서는 고려해야할 다른 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에 의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실제 성육신하기 이전에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역하셨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결국,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하였다. 명백하게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르는 서방 신학자들과 그 후로 중세 시대 로마 교회까지도 그리스도의 강하교리를 말할 때에, 벧전 3:9을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

<계속>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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