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지난 해 말에 지각 있는 부모들의 공분을 산 인천 11세 딸 학대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4년째 결석 중인 초등학생이 훼손된 사체로 냉동 보관된 채로 발견되었다는 엽기적인 사건을 전한 뉴스는 온 국민의 가슴에 짙은 피멍을 남겼다. 그래도 사람인데, 부모인데 라는 구차한 단서를 붙여가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를 변호하고 변명해 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옹색해지기만 한다. 경찰수사 과정에서 사건의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명쾌한 답을 얻기보다는 의문점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어린아이가 숨졌을 당시 7세였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12년 4월 이후 행적을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훼손된 시신만 발견됐을 뿐 뚜렷한 사망 원인은 물론 피살되었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다만 아버지의 진술을 토대로 2012년 11월 초순께 숨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란다. 경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소년의 아버지가 스스로 밝힌 진술내용을 구성해 보면 이렇다. 그 사람은 평탄치 않은 가정에서 불후한 성장과정을 거쳤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소년가장으로 살아야 했고, 어머니로부터 상당한 폭력을 당하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으나 병원에 간일은 없었다. 그의 이런 성장과정은 정신세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자녀관을 형성시켰고, 대물림 받은 그 폭력성은 7살짜리 어린 아들에게 고스란히 표출된 것이다. 그의 말대로 하면 "2012년 10월 초 평소 목욕을 싫어하던 아들을 씻기려고 욕실에 강제로 끌고 들어가다가 아들이 앞으로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이 정도로 병원에 갈일이 아니라 싶었고, 자기 자신도 그런 정도의 일로 병원에 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식의 진술을 한 것이다. "아들이 깨어났지만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한 달간 방치했고 같은 해 11월 초 숨졌다." 결코 죽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소년은 2012년 3월 경기도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 만인 4월 30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이후 다른 학교에도 다닌 일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이가 등교하지 않은 때와 아버지가 말하는 사망 시기사이에는 6개월가량의 시간적인 공백이 생긴다. 그 때에 학교를 비롯한 교육 당국이 소년의 소재 파악에 나섰지만 행적을 확인할 길이 없었단다. 아픈 가슴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고 자기와 같은 처지에서 무한 폭력을 피하지 못하고 희생의 제물 되어가는 소년, 소녀들의 소리 없는 눈물을 대변하라고 찢기고 상한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살점을 공의의 하나님께서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가정폭력은 모든 폭력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해서는 안 될 일을 당했다는 것은 육신적인 아픔보다 정신적으로 아주 깊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아담의 가정에서 일어난 가인과 아밸, 형제간의 살인극에서 그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모에 의해서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최악의 갑질과 같은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어린자녀들은 기댈 곳도 피할 곳도 전혀 없게 된다. 무방비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테러요 린치를 그냥 고스란히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현대 가정폭력 앞에 노출된 자녀들의 상황이다. 이웃사촌이 없어진 가옥 구조형태에서 벌어지는 이웃집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폭력의 희생물이 된 어린아이들이 청할 수 있는 구조의 손길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때에 무엇보다도 올바른 자녀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부모교육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의 소유물, 대물림의 도구 정도로 이해된 자녀관은 옳지 않다. 시편기자는“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시편127:3)이라고 노래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가정교육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모라 하여 내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당한 체벌을 폭력으로 확대해석하려는 것은 타락한 부모의 폭력성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의 일환으로서 체벌을 허용하셨으나 폭력을 허가하거나 허락한 것이 아니다. 새해 벽두에 일어난 이 무서운 사건을 바라보는 부모들이 자녀교육의 현명한 방법과 지혜를 성경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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