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며칠 전 호남 고속도로를 달려서 남쪽지방에를 다녀왔다. 여산 휴게소에서 요기를 하고 익산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어릴 적 일들을 뒤돌아보면서 잠간 깊은 향수에 젖어 은밀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우리 마을은 종친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주황씨 종가(宗家)마을이었다. 밭이며 논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전형적인 농촌이기에 사람들은 평생을 일 속에 빠져 살았고, 나의 부모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른 봄부터 가을 거지를 마칠 때까지 논두렁에서 밭고랑으로 허리 펼 날이 없는 그게 당시 농군들의 피곤한 일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 집에 불어온 회오리는 큰 산과 같은 아버지를 쓰러트렸고 그 많은 일들은 몽땅 어머니 몫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짐을 어머님께 지우고 차마 집을 떠날 수 없어서 두 살 아래 동생과 함께 서툰 농사일을 떠맡아야 했다. 모내기철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도무지 방법이 없었던 어느 날 마을 한가운데 있는 모정(募停)(지금의 마을 회관과 같은 공간)에서 <두레패>를 조직하는 회의가 있으니 나오라는 통지를 받고 정한 시간에 나가 보았다. 처음 경험하는 마을회의였다. 나름 격식을 갖춘 회의였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이름은 <팔봉 모내기두레>, 평당 얼마로 정할 것인가? 그리고 품삯(=최저임금)은 얼마로 할 것인가? 지난해의 품삯은 물론 이웃 마을과의 형평성까지 참고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정하는 신중함도 볼 수 있었다. 모내기철을 노칠 수 없으니 집집마다 나 올수 있는 사람은 모두 나와서 온 마을이 함께 힘을 모아 빨리 끝내자는 다짐까지 했다. 형제가 두레패가 되어서 그해 모내기는 별로 큰 힘을 드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형제는 두레패에서 가장 어렸다. 얼마나 아껴주고 배려해 주었든지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모내기를 마치는 것으로 농사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50년도 더 지난 그때는 원시적인 영농방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몸으로 때워야 했다. 비료를 사용했고, 농기구는 쇠스랑과 삽, 그리고 호미와 낫이 전부였지 싶다. 논바닥에는 어찌 그리도 잡초가 많았던지 여름내 김매기에 매달려야 했다. 논일만하는 것이 아니다. 밭일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천천히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도 되는 그런 성질의 작업이 아니었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모내기는 한 달 이내에 마쳐야하고 김 매기 역시 늦어도 칠월칠석 전후에는 마쳐야 한다. 그 많은 일들을 일정한 기간 내에 각자 힘으로 마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품앗이>라는 공동작업제도였다. 언제부터 품앗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나 생존을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 났는지 엿볼 수 있다. 품앗이는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고 한 사람을 한 품으로 셈하는 방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19살, 17살 형제지만 둘이서 이웃집에 품앗이를 해두면 우리 집에 일손이 필요한 때 일등 장정 두 사람이 와서 일을 해주었으니 우리 형제는 엄청난 특혜(?)를 누린 셈이다. 어린소년 가장을 가상히 여겨서 그렇게 배려를 해 준 것이려니 생각은 하면서도 품앗이 그 자체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서로 간에 품을 지고, 갚아가다 보면 어느 새 농사철이 다 지난다. 벼를 베어 집으로 거둬들이는 작업까지도 품앗이로 해결했다. 품앗이는 이기심을 극복하지 않고서 콩이야 팥이야 따지기 시작하면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이타적인 협동방식이었다.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다는 상생의식과 변할 수 없는 이웃사촌간의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 농촌 공동체의 아주 우수한 협력체계가 품앗이였다.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한데 모여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함께 한다.’는 생각은 삶을 꾸려감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물론이고, 특별히 목회자들은 하나님 나라의<품앗이>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 품앗이하는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추수 밭에서 충실하게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일을 책임져 주신다. 이것이 내가 터득한 품앗이 원리요, 법칙이다. 17살 먹은 철없는 소년에게“얘야, 내일 우리 밭에 와서 일해 줄 수 있겠니?”이 말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던가? 내가 가서 일해주면 앞으로 나의 일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 익어서 희어진 곡식밭에 나아가서 일할 품앗이꾼을 찾으시는 그 하나님과 품앗이에 나서기만하면 금년 한 해 나의 농사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품앗이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내신 불변의 원리이니까 말이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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