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 주인공은 야간비행을 하다가 항로를 이탈하여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다. 가족도 친지도 지상의 어느 것과도 교신이 단절된 허무의 공간에서, 외로운 별처럼 고립무원의 단독자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다시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고독과 절망에서, 아침이면 따뜻한 커피를 주고받던 지상의 식탁을 그리워하며 점점 멀리 사라진다.

프랑스의 소설가 까뮈의 작품 [페스트]. 까뮈는 페스트가 만연하는 도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비참한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 없이 각자가 혼자서 근심해야 했었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은 서로가 소통하지 않기 때문으로 여긴다. 자신의 존재와 처지와 생각이 어느 누구에게도 소통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철저한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이라는 거다.

성경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바로 그 곳이 지옥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경험한 ‘스올’(욘 2:2)은 이를 말해준다. ‘스올’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단절된 곳, 곧 지옥이다.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출구 없는 고독의 질병을 앓는 존재이다(골 2:21). 인간이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도 알고 보면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온전한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으니, 온전한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해답은 없는가?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제시한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소서.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열조 같으니이다”(시 39:12). 오늘날 날로 험악해지는 남과 북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소통의 단절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이런 때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소통을 갈망해야 하지 않을까?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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