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복음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의 역사가 아닙니다. 사람은 단지 소식을 전해줄 뿐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설득해도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그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의 눈을 여시고 보게 하셔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전하든지 올바로 복음을 전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듣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 자체를 사람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가 여부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비유를 들어 사람들의 마음 밭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금방 사탄이 와서 그것을 빼앗아 가버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잠시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지만 믿음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할 바는 단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뿐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난이 함께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온통 썩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빛으로 살게 될 때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는 언제나 사람들의 비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자신의 주먹을 믿으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지금 벼락을 쳐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중동이나 회교국가에서는 복음을 전하면 모든 것을 몰수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바울 당시에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말고 부끄러워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을 지키면서 받는 고난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의 내용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변질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만 나오면 모두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갈5:11)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도바울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순수한 복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사도바울은 순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도 있고 순수한 복음을 지키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에게 순수한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 가운데서 여전히 속고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듣고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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