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신학 학장 서헌철 목사

한 지주 집에 한 사람의 일꾼이 고용되어 있었다. 그는 주인과 한 지붕 밑에 살면서 하루에 한 번씩 잠깐 주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일꾼은 점점 일을 하지 않다가 마침내는 게으른 습성이 뼛속까지 배어들어서 전혀 일을 하지 않게 되고 말았다. 일꾼은 주인이 자기에게 불만임을 알고, 일은 하지 않는 채 비이만 맞추려고 했다.

일꾼은 주인의 지인이나 친구들을 찾아가 주인이 자기에게 화를 내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탄원했다. 주인은 그 사실을 알고 일꾼을 불러서 말했다.

“어째서 너는 너를 감싸달라는 따위의 말을 하면서 징징대고 다니느냐? 너는 나하고 늘 한 지붕 밑에서 사는데 할 말이 있으면 직접 나한테 말하면 되지 않느냐?”

일꾼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횡설수설하다가 물러 나왔다. 일꾼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주인집 닭장의 닭걀을 모으고 닭을 잡아서 주인의 화를 풀기 휘해 선물로 가져 갔다. 그러자 주인은 그에게 말했다.
“요전에는 나에게 직접 말을 할 수 있으면서도 내 친구에게 가서 울면서 네 변명을 해달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서 선물을 하려는 게로구나, 그런데 네가 가져온 것은 모두 내 것뿐이지 않느냐?” 설령 네가 네 것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나는 너의 선물 따윈 필요치 않다.“

그래서 일꾼은 세 번째 수단을 생각해 냈다. 그는 주인을 전지전능한 아버지라 칭송하고, 자선가에 박애가로 높이 칭송하는 시를 지어 주인집 창 밑을 오가며 소리 높여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인은 다시 일꾼을 불러놓고 말했다.

“저번에는 다른 사람을 개입시켜 나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내 소유물을 내게 선물하려고 하더니, 이번엔 더 요상한 수법을 궁리해냈구나, 나를 전지전능한 자선가라느니 해가면서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니냐? 너는 이런저런 말로 나를 높이 띄우고 있다만 사실 너는 나를 모르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너에 대한 다른 사람의 변명도 아니고, 또 너의 선물도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인간의 찬미의 말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은 그저 네 할 일을 하는 것, 단지 그뿐이다.(출처 : 톨스토이의 인생길)

오랜 세월동안 자기들의 소견에만 옳다는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큰 아픔을 주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지금까지 무슨 죄악을 저질러 왔는지를 부정하거나, 아예 눈을 감아 버리니, 상대에 대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독설을 쏟아내게 된다. 분별력 없는 그러한 언행의 패악(悖惡)이, 주위 사람들에게 큰 아픔, 고통 끼치게 됨에도,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사고에서인지 애국(愛國)이란 포장뿐, 무지몽매(無知蒙昧)함을 보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아직도 분노(憤怒)하고 있다. 을사오적(乙巳五賊)들과 매국노(賣國奴)들은 애국(愛國)을 외치며 나라와 국민들을 일본에 노예(奴隸)로 팔아넘긴 것을?

물론 욕구에 의한 삶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들은 자기만을 위한 욕망, 나아가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속이려는 외식,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러온 패악, 악의적 언행 등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왕(王) 됨을 원(願)치 아니하던 저 원수(怨讐)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눅 19:27(마 25:30)] - 임금이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眞實)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兄弟) 중(中)에 지극(至極)히 작은 자(者)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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