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임성택 목사

공문십철(孔門十哲) 중에 한 사람인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공 왈 “나라가 잘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공자 왈 “족식(足食), 족병(足兵), 신(信)이니라”
자공 왈 “그 세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공자 왈 “병(兵)을 버리겠다.”
자공 왈 “남은 두 가지 중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공자 왈 “식(食)을 버리겠다.”

공자는 나라가 제대로 서려면 병(兵)과 식(食)과 신(信)이 반드시 있어야 하나, 최악의 경우 병(兵)과 식(食)은 없어도 나라는 지킬 수 있으나 만일 신(信)이 없다면 나라는 절대로 설 수 없다는 말이다. 새삼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사방이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이 동지가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비윤리적 시대라고 하더라고 어떻게 입장이 바뀌면 신념도 그렇게 쉽게 바뀌는 지 고통스러울 뿐이다.

특별히 인터넷이라고 하는 가공할 문명의 이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것이 가져다주는 또한 가공할 위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도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도대체 어디 가서 확인받아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참으로 기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발표를 일단 의심하고 시작한다. 정치인들의 외침과 공약은 아예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 운명이 그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의 FTA 재협상 문제로 온 나라가 술렁이고 있다. 최초 미국과의 FTA를 반대했던 대통령과 여당이 이제는 이것을 지켜내고 더 나아가 국익을 위한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전력해야 할 처지에 놓였으니 당사자로서는 곤혹스럽겠지만 정부는 이 시점에서 국민에게 진정한 권력의 신의(信義)를 보여야 한다. 과거 주장을 변명할 것 없고, 우선의 국익을 지켜내는 협상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상황이 그런 것 같지 않으니 걱정스럽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재협상을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데 우리는 일개 담당 국장이 대책회의를 주관한다고 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면 국민은 정부에 대한 신의(信義)를 거둘 것이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이 FTA의 재협상의 흐름을 보아 대세를 꺾을 수는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현실에서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에게 이것을 지켜내겠다는 신의(信義)를 보여야 한다. 장관인선에서부터 무참하게 스스로 세운 신의를 무너뜨린 문재인 정부의 허물조차도 인수위가 없었던 탓이라고 덮어줄 수 있다. 대신 북한의 미사일이 태평양 상공을 날아다니는 현실에서 혈맹이라는 미국의 경제적 핍박에 정부는 기민하고도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능력과 신의(信義)를 보여야 한다.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국민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사드 해법에서도 동일하다. 국민이 국가정책에 따라 FTA 재협상과 사드문제에 대해 힘들고 괴롭더라도 버티겠다고 결의하면 결코 저들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어차피 국민이 믿어 주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에 휩싸여도 의미없는 것이다. 이 정부가 그래도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 국민이요 민심이다. 만일 화려한 연출에만 급급하여 신의(信義)를 얻지 못한다면 내세울 만한 치적 하나 없는 초라한 정권으로 쓸쓸히 퇴출당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병(兵)과 식(食)을 버릴 지라도 신(信)을 버리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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