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일군 선교역사가 살아 숨 쉬는 광주. 선교사들과 기독1세대의 헌신과 땀이 베인 양림동. 이곳은 일찌감치 광주, 전남 기독교 선교의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양림선교순례길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광주의 고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주광역시 관광공사가 주관하고, 주식회사 돌봄여행사(대표 김정관) 진행하는 종교문화힐링여행 광주양림순례길- 빛과 진리를 찾아서 광주12일간의 일정이 화제다. 맛의 고장인 광주인 만큼 광주 7()도 포함되어 있다.

20241월 정식 오픈하는 투어 첫째 날에는 기독교와 교회에 관한 인식을 확장하고 지도자의 인격형성과 현장교육을 통한 기독교인, 신학도로서의 정체성형성, 지역교회의 현장사역을 지원하기 위한 지식형성 등으로 유명한 호남신학대학교에서 광주, 전남지역의 선교역사에 대한 설명 및 투어 일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유진벨선교사의 기념관

이어 18954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와 목포지역에 복음을 전한 유진벨선교사의 기념관’(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1868-1925). 한국명 배유지)을 방문한다.

유진벨 선교사는 18954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목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2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또 광주에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를 비롯하여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우고, 광주기독병원도 설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위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1912년 군산에 도착하여 전주 기전여고와 신흥고 교장을 지내면서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출국 당했지만 광복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한편, 1926년 군산에서 태어난 윌리엄 린튼 선교사의 셋째 아들 휴 린튼(한국명 인휴)과 부인 베티 린튼(한국명 인애자)은 평생 전라도 농촌과 섬에서 지내며 결핵 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존 린튼(한국명 인요한)이 바로 이들 부부의 막내아들로서 1959년 순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나 린튼, 에스더 린튼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렇게 유진 벨에서부터 시작된 린튼 가문의 한국사랑은 5대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유진 벨은 광주광역시 양림동 호남신학대학 구내 선교사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오방 최흥종기념관

두 번째로 찾아가는 곳은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나환자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최흥종 목사의 기념관이다.

오방 최흥종 선생은 188052일 광주 출생으로 부모를 일찍 여의고 방황하였으나 유진벨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부터 삶의 변화를 맞이했다. 이후 의료선교사 포사이드와의 만남은 일평생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헌신하는 목회자의 길을 택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최흥종은 북문안교회에서 광주 최초의 장로(1912)였으며 1921년 북문밖교회(중앙교회)를 설립하였고, 금정교회(1924-25)와 모슬포 교회(1929)의 목사로도 시무했다.

1920년대에는 동포가 많이 거주하던 시베리아로 두 차례(1922, 1927)에 걸쳐 선교활동을 펼쳤고, 1930년대에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무등산에 들어가 신림 기도처를 만들었다. 오방 최흥종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및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기독교적 가치관을 직접 실천하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으로 광주 근대사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3·1운동에 참여하여 14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광주노동공제회와 계유구락부를 만들어 활동했으며, 1927년에는 좌·우합작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전남회장, 1935년 일제의 신사참배의 강요에 반대하여 교회의 각성을 촉구하고 사망통지서를 돌리고 무등산에 은거하여 나환자와 걸인들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의 전남위원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오방 최흥종 선생은 3·1운동에 참여한 청년들을 인도해 1920729일 광주기독교청년회(YMCA)를 창설하여 민족과 청년들의 계몽운동에 나섰다. 또한 북문안 예배당에 유치원을 개설하고, 여성들을 위한 야학을 설립하여 아동과 여성교육의 기반을 닦았다. 광주YMCA는 어비슨 선교사와 함께 농업실습학교(1933)를 설립하여 농촌부흥에도 힘을 보탰다. 1944년에는 광주의전(전남의대) 설립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해방 후에는 의재 허백련과 농업기술학교인 삼애 학원(1948)을 무등산 기슭에 설립하여 농촌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삼애(三愛)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나라 사랑을 뜻한다. 오방 최흥종 선생은 평생을 한센병(나병) 퇴치와 빈민운동에 바쳤기에 나병 환자의 아버지요 걸인들의 아버지로 불린다. 1909년 그는 광주 제중원(현 기독병원)에 근무할 때 포사이드 의료선교사의 희생에 감명받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1912년 봉선리 땅 1,000평을 기증하여 광주나병원을 설립하였고, 1927년에는 여천으로 이전하여 애양원을 설립했다.

1930년대에는 경성까지의 구라 행진과 나환자근절협회를 조직하여 구라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해방 후에는 1953년 남평에 음성나환자 자활촌 호혜원을 세웠고, 잇달아 결핵 환자를 위한 송등원(1956)과 무등원(1963)을 세워 병든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해 헌신했다.

오방 최흥종 선생은 해방 이후 많은 사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정계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기독교사회 운동가로서 생의 마지막까지 낮은 곳에서 걸인, 병자, 고아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오방 최흥종 선생이 1966514일 서거하자 광주시 사회장(518)을 거행하였고, 독립운동가로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오방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이 증여한 휘호처럼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을 사신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양림동선교사묘역

세 번째로 찾아가는 곳은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와 그의 가족이 잠들어 있는 양림동선교사묘역이다.

양림동 선교사 묘지는 광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새 물결과 일제 치하에서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23인의 선교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은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배유지 목사와 클레멘트 오웬의 주된 선교지였다. 배유지 목사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고, 글레멘크 오웬은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배유지 목사를 기념하기 위한 선교기념비와 클레멘트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위해 건립한 오웬 기념각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밖에도 허철선 선교사의 사택과 커티스메모리얼,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 등 양림동산 선교사사택을 방문하고, 광주의 근대역사를 상징하는 종탑이 있는 양림교회와 오웬기념각을 방문한다.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내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친지들이 보낸 기금 4,200 달러로 1914년에 세워진 연면적 434평방미터(부속건물 포함)인 양옥건물이다. 이 건물은 평면 형태로 보아 예배당 및 집회실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나, 지금은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웬은 1900년대에 광주에 들어온 양림동의 서양촌 외국인 중 1명으로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과로로 1909년에 죽었다. 오웬은 생전에 그의 할아버지 기념병원을 지으려다 선교 활동이 급하다고 판단하여 먼저 할아버지 기념각을 지을 계획을 수립 하였으나, 그 계획이 추진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기념관 현판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제일교회

둘째 날에는 첫 번째 일정으로는 1190412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 1868~1925] 목사가 성탄 축하 겸 주일 예배를 보면서 시작된 광주의 첫 교회인 광주제일교회를 방문한다.

5.18자유공원

이어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있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을 재현한 ‘5.18자유공원을 찾는다.

역사적 투쟁의 자취이자 인권·평화·화합의 상징으로 기억될 현장을 지키고, 후대의 교육장으로 활용할 목적을 지닌 5.18자유공원은 역사적 자료를 보관하는 자유관, 영창, 법정 및 각종 기념비로 구성되어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자료와 사진들을 보관한 전시실과 연행자들이 고문과 조사를 받았던 헌병대 중대 내무반, 임시취조실로 사용한 헌병대 식당, 고문수사와 재판을 지휘한 계엄사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이 임시본부로 사용한 헌병대 본부사무실 등이 있다.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법정과 6개의 감방으로 이루어진 영창이 있는데, 5.18기념 기간에는 영창체험을 할 수 있다.

1913 송정역시장

마지막 일정으로는 110년의 전통을 가진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인 ‘1913 송정역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에겐 삶의 터전이지만, 방문객들에겐 바꾸기 위한 변화가 아닌, 지키기 위한 변화로 탄생한시장이 다양한 추억을 선물한다. 무엇보다 광주 7미 중 하나인 송정리향토떡갈비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송정역 시장 골목의 바닥에는 건물 연도가 쓰여져 있으며, 이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건물의 완공 연도를 표시한 것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시장의 모습을 되 짓을 수 있다. 100년 간 이곳을 지켜온 36개의 기존 상점들의 간판의 글씨, 가게 형태, 가게 색상 중 하나는 꼭 남겨두었다. 옛 정취를 살리자는 취지로 건물 자체의 리모델링은 최소화하고, 간판의 디자인은 상인들의 추억을 담아 제작됐다.

이와 관련해 김정관 대표는 광주로 중심으로 12일을 기획했다. 올해 팸투어를 2번을 실시하고 점검 후, 내년 상반기인 1월에 정식 출시예정이라며, “돌봄여행사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지역을 개발해 오던 중에 기독교문화에 관심이 높은 지자체와 협력해 하나씩 개발해 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난 23년도 초에는 전주전북순례길을 진행하였고, 하반기에는 광주양림순례길을 기획해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양림동은 광주의 구도심이다. 자랑할 만한 문화가 숨어있는 곳이다. 구도심을 중심으로 선교유적지가 많이 있다, “하지만 광주에는 좀 널리 알리고 싶은 고민이 있다. 이러한 광주가 도와달라는 요청에 레트로 열풍이 불 듯 현대와 과거가 잘 조화가 된 곳인 양림동에 양림선교여행을 기획하게 됐다. 광주지역 교회들과 협력햐 훈련된 성도들이 직접 문화해설사로 나서 성지를 소개할 예정이다. 이달 팸투어를 마치고 프로그램 정비를 통해 20241월 정식 오픈한다고 밝혔다.

한편 돌봄여행사는 국내성지순례, 기독교성지순례, 교회여행전문 여행사다. 2009년 국내성지순례를 시작으로 여수 순천 등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발굴과 엮어 성지순례 코스를 만들어 지금까지 22개정도의 여행상품 준비되어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