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이민 교수

곽선희 목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설교가다. 오로지 설교 하나로 교회를 세우고 부흥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켰으며 교회가 교회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유일무이한 목회자다. 그가 세운 소망교회는 오직 강단 설교 중심으로 성장하고 부흥한 유일한 초대형교회다. 곽선희 목사는 오직 설교로 교회를 부흥시킨 140여 년 한국교회사에서 하나밖에 없는 독보적인 목회자다. 곽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1960년부터 91세인 2023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평생 2만 번 이상 설교하였다. 곽선희 목사는 설교를 위해태어났다. 그는 설교에 목숨을 걸었다. 그는 설교에 대한 천재적 재능에 더하여 열정적 노력으로 오늘의 명설교가로 탄생하였다. 곽선희 목사는 목회에서 은퇴했지만 강단 설교는 지금도 현역이다. 2023년에도 매주일 최소한 두 차례 강단에 서서 종말론적으로 설교하고 있다. 미국의 프린스턴신학대학은 곽 목사를 금세기 최고의 설교가로 꼽았다. 풀러신학대학원은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최고의 설교가로 그를 극찬하였다. 전 감신대 김홍기(1951~) 총장은 춘원 이광수가 곽선희 목사의 설교를 들었더라면 불교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엄청난 평가를 했다.

목회자 중에서 곽선희 목사의 설교를 한 번이라도 안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거의 모든 목회자의 서재에는 지금도 출간되는 그의 설교집이 한 권 이상 놓여있다. 그를 통해 예수 믿고 세례받은 사람은 수십만 명에 이르며 회중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곽 목사의 설교는 매스컴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의 설교집들은 해외의 목회자들에게도 필독서가 되었다. 그의 목회는 전 세계 교회의 이목을 끌었고 많은 목회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의 설교와 목회를 연구한 책과 논문은 부지기수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0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곽선희 목사의 설교를 가장 많이 인용하거나 참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곽선희 목사는 설교자의 대명사로 한국 교계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설교는 왜 감동을 주고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이에 필자는 목회자의 복음 설교를 한국교회 부흥의 유일한 전략으로 규정하고 필자의 멘토인 소망교회 곽선희 원로목사의 설교 철학을 곽선희 설교학이라는 부제로 본 칼럼을 통해 간간이 전하고자 한다.

미국의 신학자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2018)은 자신의 저서 이 책을 먹으라(역자 양혜원, IVP, 2006)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받아들이며, 설교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설교를 ‘religious lecture’ , ‘종교적 강의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곽선희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예배를 빼버리고 강의만 남긴 실수를 범했다. 칼뱅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이 예배를 빼버려서 비쩍 말랐다. 예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명상을 잃어버렸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관계를 잃어버렸다. 이전에 목회 신학이 부족할 때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열심히 있다 보니 교회는 강의실과 학원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설교를 신학적 강의로 착각하여 설교는 생명력이 없어졌다.” (그말씀, <설교중심의 목회>, P. 195, 두란노서원, 1994. 6월호)

곽선희 목사가 말하는 설교는 무엇인가? 교회의 관건은 무엇보다 설교다. 개신교에서는 예배가 설교이고 설교가 예배이다, , 예배적 설교, 설교적 예배가 핵심이다. 목사는 설교를 위해 존재한다. 설교는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고 말씀으로 말씀되게 하는 것이다. 설교는 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서 그 말씀이 성도를 통해 기도가 응답되는 행위다. 설교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 구원의 도’()를 전파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이 생명의 도에 대한 체험적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하며 이 체험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설교다. 오늘의 설교는 교회의 본질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내용으로 한다.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져야 목사의 행복이 존재한다.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행복하다. 설교는 인간의 언어가 하나님의 언어로 바뀌는 Incarnation , ‘말씀이 성육신 되는 사건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속적인 재해석이다. 따라서, 설교는 복음에 대한 단순한 선포와 증거이어야 한다.

곽선희 목사에 의하면 설교에 대한 오해가 많다. 설교는 지식이나 철학 강의, 윤리 강연이 아니다. 율법도 아니다. 성경을 지식의 방편으로 삼아서 지식을 주입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교는 교육적 기능은 있지만 교육이 아니다. 설교는 강의가 아니다. 설교를 ‘intellectual approach’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설교는 환경, 인권, 정치 등 사회복음주의로 흘러가서도 안 된다. 설교를 많이 할 필요도, 길게 할 필요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때에는 한 마디로만 설교하셨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성경을 윤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인의 정의는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설교를 통해서 기도 응답을 받는 사람에 있다. 교인들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믿고, 받음으로써 목회자와 카리스마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설교를 통해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난다.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중생시키고 성화시키는 것이다. 곽 목사는 일부 교역자들에게 설교가 무엇인지, 잘하는 설교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설교를 잘하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하는 것이고 2000년 전의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 통역하는 것이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효과적인 말로 해석해주어 중생과 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199812<소망 아카데미> 강의의 일부)

곽선희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교를 정의한다. 예전에는 설교를 대화’(conversation),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재해석’(reinterpretation)이라고 했다. 현대에 와서는 설교는 신령한 연출’(production)이다, 설교는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픽션(fiction)화하는 것이므로 설교는 연출(production)이다. 각본이 되는 성경을 효과적으로 연출하여 그 의미를 잘 전달해야 좋은 설교가 된다. 연출의 의미는 말로만이 아닌 설교자의 인격, 얼굴, 표정에까지 해당된다. 최근 곽선희 목사는 설교에 대한 또 하나의 실천적 정의를 탄생시켰다. 설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곽 목사는 설교란 ‘Not Interpretation But Application’(해석이 아닌 적용)이다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해석이 아닌 적용

공상 문학의 고전인 나니아 연대기(Chronicles of Narnia, 1950~1956)를 쓴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 영국의 학자·소설가)는 설교를 지도로 비유했다. 그는 설교라는 지도가 없으면 신앙은 길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설교는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삶을 해석하는 능력은 삶에 대한 적용으로 영혼의 내비게이션이다.

청교도들의 설교 구성의 핵심은 적용이었다. 설교 전체의 50% 이상이 적용이다. 미국의 청교도 신학자인 조너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죄인>이라는 설교는 전체 38개의 문단으로 되어있는데 그 중 19개가 적용이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 1921~2011) 목사는 설교에 대해 “Between to World”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텍스트(text)와 설교를 듣는 회중이라는 콘텍스트(context)의 삶의 세계로 규정했다. 또한, 스토트는 설교를 교회와 불신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으로 표현했다.

현대 설교학에서의 설교는 ‘Not Interpretation But Application’이다. , 성경을 공부하고, 암기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로 설교다.

곽선희 목사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곽선희 목사의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논문은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부활사상>이다. 곽 목사는 예수의 부활이 구약에 예표적으로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구약에서도 예수를 만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이사야서를 읽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말씀이 너의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렇게 딱 한 마디 하셨다. 그래서 곽 목사는 이것을 설교학적 관점으로 설교는 ‘Not Interpretation But Application’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현대 설교의 본질이며 과제다. 예수께서는 이사야서를 보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사야 당시의 정치 상황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설교하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오늘 너의 귀에 응하였느니라이 한마디가 예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설교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나한테 적용해야 한다. 특별히, 설교자는 성경을 읽으면서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며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듣고 보았던 바로 그것을 전하는 것이 설교의 본질이다. 곽선희 목사의 설교 신학은 한 마디로 ‘Not Interpretation But Application’이다.

곽선희 목사는 설교의 가치는 성경의 진리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진리를 구체적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데에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설교를 text(성경본문)context(상황, 세상)의 긴장 관계로 정의한다. 곽 목사는 설교란 context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text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 이것을 다시 context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 설교자는 textcontext 사이를 단일주제로 연결하여 핵심에 적중(hit)해야 한다. 설교 한 편에는 간단명료한 주제(simple theme)가 딱 하나 있어야 한다. 곽선희 목사의 대략적 설교 한 편의 전개 구성을 보면 30%는 현대인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20%는 그 문제의 해답을, 나머지 50%는 본문 메시지를 해석하는데 할애한다. 그러기에 회중들은 설교시간에 딴생각할 겨를도 없고 졸 수가 없다. 설교는 지성적 노력이 아닌 적용이다.

목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목사는 죄와 사망에서 구속받은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은 설교로 이어지고 성도들로 하여금 설교는 오늘 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도록 설교에 목숨 걸어야 한다. 이것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설교는 신문(context)과 성경(text)을 읽으면서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성경은 복음의 날줄이고, 시대는 복음의 씨줄이다. 날줄씨줄을 바르게 엮는 작업이 곧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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