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운그리스도의교회 오수강 목사

현재 한국교회는 사회 경제와 더불어 세계에 교회의 위상을 한 것 드높이고 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위축된 느낌이 있었지만 다시 한번 더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필연적으로 올 것을 의심치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교회는 일제 36년간의 식민 지배와 6,25의 한국 전쟁과 419 혁명, 516 군사혁명, 518 민주화 등의 국내의 난재들이 성장의 발목을 잡았었으나 근면과 끈기로 이를 극복하여 파괴된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데 한국교회의 기도가 뒷받침한 것은 신앙인의 희생정신이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투철한 신앙 의식을 가진 진실한 신자들의 헌신이 나라의 위상을 세우는데 한몫을 감당했음이 자랑스럽다. 젊은이들은 나이 든 원로들의 공력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교자 중에 기독교 지도자들과 진실한 신자들이 있었으며, 또한 칠십년대와 팔십년대의 부흥의 시기가 있었기에 오늘의 성장과 도약을 이룰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난한 시절 초근목피로 주린 허리를 동여매고 후세를 위해 희생한 원로들의 공적을 버려서도 보지 못한 채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비하하거나 원로들의 무용담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한 나라의 생성과 유지는 어려울 때 목숨까지 희생을 각오한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윤택한 시대를 이룰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지난 일들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또한 나에게 도움 주거나 이익을 끼친 자들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망각하여도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어렵게 한자들에 대해선 절대 잊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대대로 원수를 갚고자 하는 대물림도 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까지도 지역적인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종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사상과 이념이 달라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물고 뜯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교회만큼이라도 이러한 편견과 지역감정, 인종차별과 빈부의 차별을 줄이고 모두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데도 그게 그렇게 되지 않음이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가 타성을 버리려면 먼저 자립 교회와 미자립 교회 간의 격차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자립 교회는 더 성장하기 위해 더 가지려고 전도에 전도, 부흥회 위에 더 큰 부흥회, 현대식 예배당 건물 위에 더 큰 예배당을 위해 더 많은 헌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자립 교회를 자립하도록 도와줄 여력이 없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재도약을 위해선 자립 교회들의 초거대 성장이라는 이유를 조금은 줄였으면 하는데도 그게 그렇게 안 되니 문제가 아닌가?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자신을 버린 십자가에서는 죽음이다. 기독교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니 그게 문제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고,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강림하셨으며, 죄인이 죽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내어 주셨다. 또한 제자들인 사도들도 스승의 뒤를 이어 역시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길을 가신 것처럼 희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터를 닦았다.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근거와 터 위에 세워진 주님의 몸이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의도와 사도들의 생각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성경에 계시 된 기독교와 오늘의 기독교는 무늬는 같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 내용이 다르다고 생각되어진다.

교회의 건물도 비슷하고 성직자들도 비슷하고 신자들도 비슷하다. 그런데 다른 점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과 신앙을 가졌는지가 의문이다. 정말 오늘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로서 천국을 이룰 수 있겠는가가 의문이다. 강대상에 성경도 그대로고 성경을 강론하는 지도자도 그대로다. 예배도 그대로고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도 그대로다. 그런데 초대 교회처럼 교회가 하는 일은 그대로가 아니다. 교회가 더 크게 더 넓게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신앙도 인간성도 체면도 사랑도 모두 뒤로 하고 오직 내 교회 부흥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다르다.

초대 교회에는 복음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유무상통이 있었고 나눔이 있었으며 서로 도움을 주는 유기적 관계가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기독교회는 세속적인 것들을 자랑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다시 한번 한국교회 도약을 위해선 아깝지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은 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 교회만이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기획해야 한다. 교회의 벽, 교단의 벽, 교파의 벽을 허물고 모두 하나의 교회로의 체계가 되도록 말이다. 초대 교회 신앙 회복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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