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시편 32는 일곱 참회시 중의 하나로 분류된다. 특히 1절과 5절에 사람의 모든 죄를 한곳에 모아놓은 듯 나열하고 다시 반복한다. 허물(1,5절), 죄(1,5절), 악(2,5절), 숨기다(1,5절). 시인은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죄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야웨께 자신의 허물과 죄와 악을 ‘자복하고, 아뢰고, 숨기지 않음으로써 그 분께 용서받을 수 있다고 노래한다. 이렇듯 경건에 힘쓰며 하나님께 기도하면 ‘홍수가 범람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6절)이며, 하나님께 이끌린 경건한 신앙인 하시드(דיסח)는 결국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 헤세드(דסח)를 맛보게 될 것이다(10절). 마침내 죄를 용서 받아 야웨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11절).

시편 히브리어 본문 첫 두 구절은 <개역개정>과 달리 ‘복이 있도다’(ירשׁא)라고 시작되는데 놀랍게도 바울의 칭의론에 맞닿는다(롬 4:1-8; 갈 3:6-9). ‘믿는 이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인정하는 바울 신학은 창세기 15장 6절로 시작되지만 결론은 시 32편 1-2절로 마무리된다. 칭의론은 아브라함의 경건한 믿음이라는 업적이나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의 표현대로 ‘허물과 죄와 악’으로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것은 일꾼이 마땅히 받는 보수가 아니라 값없이 받는 은총이다(롬 4:4-6). 시인은 공적에 따른 경건(하시드)과 은혜에 기초한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으로 대비시킨다.

경북 봉화 우곡성지는 농은 홍유한(1726-1785)의 28년 수계(守誡)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최초 수덕자(修德者)로 알려진 농은의 묘가 발견되고 후손들의 순교가 알려지면서 한국천주교가 2009년 이곳을 성지로 조성하였다. 유학자 홍유한은 성호 이익의 제자로 수학하면서 <천주실의>와 <칠극> 등 기독교 사상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Diego de Pantoja)가 중국에서 발행한 <칠극>(De Septem Victoris)은 젊은 선비 홍유한을 매료시켰다. 사람이 피하기 어려운 일곱 가지 죄를 극복한다는 ‘칠극’(七極) 사상은 유학자인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중세교회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죄를 시편 32보다 많은 일곱 가지로 세분하였다. 곧 “분노, 교만, 음욕, 나태, 폭식, 질투” 등이다. ‘칠죄종’으로 불린 일곱 가지 죄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큰 덕목이었다. 홍유한은 칠극이라는 강력한 자석에 이끌렸고 자신의 수양 덕목으로 삼았다. 그는 입신양명을 위한 벼슬길 대신 오로지 칠극에 힘쓰고자 낙향을 결행한 것이다. 복오(伏傲), 교만을 억누르다. 평투(平妬), 질투를 가라앉히다. 해탐(解貪), 탐욕을 풀다. 식분(熄忿), 분노를 없애다. 색도(塞饕), 식탐을 벗겨내다. 방음(防淫), 음란을 막다. 책태(策怠), 게으름을 채찍질하다. 홍유한은 세례를 받지 않고 사제의 도움 없이 매달 7, 14, 21, 28일에 맞춰 기도와 묵상, 고행과 절식을 실행하였다. 조선의 선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몰랐으나 ‘갈 길을 가르치고 훈계하는’(8절) 가르침에 이끌려 믿음의 길을 걸었던 셈이다. 한국천주교는 홍유한의 28년 칠극 수계를 인정하여 ‘수덕자’로 세웠다(갈 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그가 ‘의롭다’고 인정받았듯(창 15:6) 홍유한의 수계와 삶을 후대 신앙의 본이자 ‘덕’으로 표방한 것이다.

시인의 참회가 시편 32에서는 용서로 귀결되었으나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χαρις)로 확장된다. 영적인 삶의 선행 조건은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시편 32을 평소 즐겨 낭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노년에는 시편 32를 직접 벽에 새기고 날마다 그 말씀을 읽으면서 위로와 소망을 확인하였다. 경건한 하시드가 하나님의 무한한 헤세드를 경험하듯, 죄인들이 결국 의인으로 인정받고 정직한 자가 된다(11절).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은 야웨 찬미로 이어진다.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 사람의 누릴 복이다(롬 4:6). 시편 32는 복음의 근간을 노래하며 죄의 고백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은총이 곧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복임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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