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정감리교회 담임 문병하 목사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9;27>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한 지성인이 폐수종이라는 병으로 입원했다. 그는 한 달 동안 이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는 등 발악을 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서 돌보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다. 아내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남편에게 그의 병명을 말하지도 못했다.

이 사람이 바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이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마지막은 죽음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였다. 한편 1940년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조국 독일이 히틀러에 의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부를 중단한 채 급히 독일로 돌아간 목사가 있다. 그는 전쟁과 히틀러를 반대하다가 체포되었고, 감옥에 수감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한 영국 장교의 유고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영국 장교는 그 목사와 함께 같은 감옥에 있었다. 1945년 4월 8일 주일 아침, 주일 예배도 마치기 전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독일군인 둘이 찾아와서 그를 불러내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거기에 모인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형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 함께 있던 영국 군인이 말하기를 “목사님 이것이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목사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이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내 생명의 시작입니다. 감옥 생활은 끝났습니다. 내 자유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생은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형장으로 나갔다. 그 목사님에게서 느껴지는 놀라운 평안과 기쁨은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에게 큰 인상과 감명을 주었다. 이 사람이 바로 본회퍼 목사이다.

죽음 앞에서 보는 장 폴 사르트르와 본회퍼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을 앞에 두고서 왜 이렇게 서로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것이다. 인생에는 세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이다. 2단계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3단계는 죽음 후에 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런데 1단계 인생은 2단계를 생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2단계에서는 3단계의 삶을 모른다. 그저 희미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후에 분명히 3단계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을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히9:27)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1937년 출간)에서 독일교회가 값싼 은혜를 나누고 있다고 비평했다. 그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설교, (세례의 의미를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설명하는)예식을 무시한 세례, 회개가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성례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싸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름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를 따름에 따른 고난이 없는 은혜, 성육신의 실천이 없는 은혜이기도 하다. 즉,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 사순절을 지나며 참회하오니 속죄의 고난을 향하여 걸어가시는 주님을 묵묵히 따르게 하소서/욕심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탐욕으로 목말라 하는 욕망의 옥합을 깨뜨리게 하소서/날마다 세속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거친 세상의 물결에 휘둘리고 유혹의 속삭임에 혼탁하여진 지친 영혼을 건져주옵소서/돌아보면 사랑 가운데 지나온 모든 것이 감사와 은총인 것을 깨닫게 하소서/고통받는 이를 찾아 위로하게 하시고 절망하는 이와 함께 하게 하소서/오늘도 제 삶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소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