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이민 교수

어떤 수도사에게 평소에 말이 많기로 유명한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누군가가 수도사를 욕한다고 고자질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사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리가 없는데요.”라고 했다. 이에 다시 , 진짜 했는데요.”라고 재차 말하니 수도사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워낙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 그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말을 언제 들었겠어요?”

말의 홍수 시대다. 요즈음은 선거철이라서 정치인의 말이 난무한다. 하기야 정치인도 영어에서는 스테이츠먼’(statesman)폴리티션’(politician)으로 나눠진다. 전자는 올바른 말을 적절하게 잘하는 사람으로 국가와 민족, 다음 세대들의 이익까지 생각하는 긍정적 정치가를 칭한다. 후자는 로비스트들을 끼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정적인 정치꾼을 뜻한다. ‘의 질에 따라서 정치가인지 정치꾼인지가 결정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속을 지키라고 경고한다. 탈무드에도 선물을 줄 때 말을 많이 하면 안주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자녀에게 용돈을 줄 때 소위 설교하지 않고 거저 주어야 한다. 자녀교육은 잔소리로 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고 설명을 많이 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예수의 달란트 비유(25:14~29)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말이 더 많았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결국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심판받았다. 하지만, 그의 는 역설적으로 부지런했다. 일하지 않고 묻었으니 게으른 거다. 그럼 왜 악한가? 그는 열심히 일해 봤자 전부 주인 소유인데 왜 열심히 일하나?’라는 못된 심보 때문이다. 게다가 말도 많았다. 충성하는 사람은 말할 시간이 없다. 말만으로 충성하는 사람은 악하다.

독일의 가톨릭 사제이며 영성가인 안셀름 그륀(Anselm Grun, 1945~)의 저서 하늘은 네 안에서부터(Heaven Begins Within You, 역자 정하돈, 분도출판사, 2014)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필수 조건은 침묵이다. 사람은 침묵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평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침묵할 때에 자기중심의 생각과 자기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침묵하면서 내면의 소용돌이치는 먼지는 가라앉히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안셀름 그륀은 같은 책에서 사람은 세 가지 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상대방의 말을 깊이 듣고 잘 알아들어야 한다. 둘째, 말하지 않는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침묵 속에서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말하고자 하나 어떻게 말할지 모르고, 좋은 말을 찾지 못해서 말 못하는 그 말도 들어야 한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이 상식이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하는 것은 지혜다. 더욱이, 그 침묵이 침묵으로 끝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기독교 복음이다. 침묵은 기다림이다. 그리스도인의 침묵은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듣는 마음이다. 침묵은 또 다른 인내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세요.” 하지만, 하늘로부터 응답이 없었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수는 하늘 아버지의 침묵을 응답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기도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사랑은 전적 수용’(total acceptance)이며 하나님의 침묵은 기도 응답의 일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께 제 아들을 구원해주소서라는 기도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치와 부끄러움의 상징인 십자가를 쓰러지며 다시 일어서서 힘겹게 지고 가는 아들의 길을 그저 침묵하며 묵묵히 따라갈 뿐이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발적 침묵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침묵이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때만 말하라.”(Be silent, or say something better than silence.) 가슴 깊이 새겨둘 영국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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