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이민 교수

가톨릭교회의 성인(聖人)인 프란치스코(Francesco, 1182~1226)는 제자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뽑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번은 제자가 될 후보자들에게 작은 화분 하나와 작은 씨앗 하나를 주면서 한 달 동안 키워서 가져오라고 했다. 한 달 후, 대부분의 후보들이 꽃을 피운 화분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들은 다 탈락했다. 오직 한 후보만이 한 달 동안 물을 줬는데도 꽃이 피지 않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사람이 제자로 선택받았다. 사실은 프란치스코가 후보들에게 씨앗이 아니라 씨앗 모양의 작은 철사를 나눠준 것이다. 이 철사를 심으면 꽃이 피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제자 선택 기준은 위선적인 사람이 아닌 정직하면서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예수는 마가복음 815절에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누룩(malt=leaven)은 다른 음식물에 들어가 그 음식물을 발효시키는 효소다. 여기에서는 타인에게 강한 영적 오염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누룩은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과 계명을 인본주의로 받아들여 백성들을 습관적 종교 생활로 이끄는 이며 이다. 누룩은 바리새인의 핵심가치다. 사실을 부풀리고 본질을 호도하며 과장시키는 가짜 신앙이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위선과 허세의 종교 생활이다. ‘헤롯의 누룩은 거짓말과 인기에만 몰입하는 정치적 종교 생활이다. 예배도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쇼맨십으로 가득 차있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큰소리로 기도한다. 마음은 없고 입술만 움직이는 찬송을 한다. 정성 없이 음악성만 신경 쓰는 성가대원을 긍지로 여긴다. 예배당에서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만 고집하여 자리다툼을 벌인다.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제사 대신 주여, 모두 주시옵소서하며 하나님께 청구서만 냅다 들이내민다. 예배 후에 주차 문제로 교인들과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싸우며 받은 은혜를 엎어버린다. 교회 봉사를 신앙으로 착각하여 자랑질만 일삼는다. 교회를 사교장으로 이용하여 사익을 위한 종교 장사를 한다. 헌금액수를 떠벌리며 으스대는 교인들도 많다. 교회의 직분을 계급으로 착각하여 종교 놀이를 자행한다. 예배 시간에 그렇게 경건하고 점잖던 얼굴이 제직회와 당회에서는 싸움닭으로 변한다. 예배당에서 친절하고 참을성 많던 사람이 가정에서는 폭력과 욕설로 도배한다. 직장에서는 부정과 비리의 대명사가 되어 전도의 장애가 된다. ‘40일 금식기도 O , 철야기도 O 문구가 새겨진 명함을 득의양양하게 나눠준다. 더러는, 가운 입고 거룩한 척하며 대접만 받으려는 거지 근성의 목회자도 많다. 사이비교 교주처럼 권력을 휘두르며 물욕에 찌든 당회장도 있다. 교회의 사이즈와 숫자에만 매몰되어 기업체 회장 행세를 하는 교역자도 있다.

어느 교회의 주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집안일이나 직장일로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으면 교회에 나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억하고 드리는 정성스러운 시간을 원하시지 다 쓰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쓰다 보니 물질이 없으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첫 열매와 정성을 원하시지, 여러분이 쓰다 남은 물질을 받으시는 거지가 아닙니다. 집안일과 동네일로 찌들고 힘들면 교회 봉사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찌든 마음과 귀찮은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받으실 만큼 구차하지 않습니다. 직분을 받고 그 직분을 잘 감당치 못하려면 그 직분을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은 직분을 맡은 자에겐 책임을 묻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죽지 못하고 살아서 꿈틀대는 욕심이 교회 안과 밖에서 위선적 예수쟁이를 양산하고 있다. 예수는 특권적이고 부패한 그들만의 리그를 배격한다. 성경은 타락하고 위선적인 ()영성적생태계를 거부한다. 그리스도인은 허세와 위선이라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예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아야만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기독교인이 줄어들며 전도의 문이 막혀있는 첫 번째 이유는 일부 교인들의 위선적 신앙이다. 인간은 미워서가 아니라 싫어서헤어지는 법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 저자 미치 앨봄, 역자 공경희, 세종서적, 1998)은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둔 모리 슈바르츠(Morrie Schwartz) 사회학 교수와 그의 제자인 미치 앨범(Mitch Albom) 간의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그리하면 죽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죽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살아가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아가페 사랑만이 위선을 혁파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보다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소망하는 태도가 복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사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총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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