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정감리교회 담임 문병하 목사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린도후서5:7)

어느 권사님을 심방을 했을 때 권사님은 목사님, 제 스스로 걸어서 교회에 갈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을 바라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발로 설 수만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말할 수만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먹고 소화시킬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을 수만 있다면, 수술비만 있다면, 몇 개월만 더 살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의 이 같은 간절한 소망을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누리며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기적 같은 삶을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내가 부러워하는 동안 어떤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상대방을 부러워하는 나머지 자신의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하며 감사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당장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에 반응하며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환경과 조건에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며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안정감이 없다. 조그만 환경의 변화에도 불안을 느낀다.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심한 희비의 곡선을 그린다. 어떤 때는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심한 감정의 희비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근시안적이다. 멀리 볼 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당장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보고서 실망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며 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있다.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다. 저들의 모든 앞길을 준비하여 주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가진 신앙을 전천후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하나는 내 인생에 기적 같은 것은 없다고 믿는 삶이다. 반면 또 하나는 하루하루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인생은 전자가 아니요 후자의 삶이다.”라고 했다.

지금 살아가는 삶이 때론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가? 아니면 특별한 기적을 체험해 보기 원하는까? 자신의 삶을 기적을 경험하는 삶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의미에 대해 묵상해 보자.

주님! 고난의 마중물로 인하여 감사하게 하옵소서/금이 간 자존심으로 인해 아파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덕지덕지 걸친 가식과 외식의 옷을 벗게 하옵소서/오만하고 자고하였던 자아를 고난으로 깨우쳐주셔서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흔들리는 저를 보게 하소서/수치의 십자가 위에서 고개 드시며 저를 바라보는 그 얼굴을 보게 하옵소서/저로 하여금 고난이 복임을 알게 하옵소서/더 이상 저의 교만이, 더 이상 저의 혈기가, 더 이상 저의 연약함이, 가시가 되어 주님을 찌르지 않게 하소서/생각도 주님의 생각을, 말도 주님의 말을, 사는 순간마다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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