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구약학 김창주 교수  

시편 37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작성된 지혜시다. 이따금 답관체(踏冠體)라는 한자어로 설명된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각 구절의 ‘머리’[冠]에 씌워 첫 글자로 삼았다는 뜻이다. 시인은 22글자를 2절마다 하나씩 사용한다. 알파벳 순서는 시의 내용을 쉽게 연상하며 동시에 암송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주제는 의인의 보상이며(16,21,25,32,39절) 크게는 인과율이다. 저자는 전도서의 철학자일 수 있으나 생활 속의 교훈을 가르치는 교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시편은 고대 이스라엘의 도덕, 교훈을 위한 교재로 활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악인과 의인의 대조가 뚜렷하다.

선과 악의 대립 가운데 시인은 악의 횡포와 번영에 불평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1,7-8절). 왜냐하면 주님이 악인을 비웃고 그의 팔과 활은 부러지며 땅에서 끊어질 것이나(2,9,13,15,17,28,38절) 의인을 악인의 손에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33절).

그러므로 의인은 야웨를 신뢰하고 착하게 살며 참고 기다리면 된다(3,7,34절). 시편 37은 하박국의 예언으로 압축될 수 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예언자가 한 구절에 압축한 교훈을 시인은 히브리어 22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친다. 다음은 3절 사역이다. “야웨를 믿고 선을 행하며 땅에 사는 동안 ‘믿음’을 먹을거리로 삼아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날마다 거르지 않고 섭취할 음식처럼 ‘꾸준히’ 지속하라는 뜻이다. 예수는 이 말씀을 실천적으로 행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요 4:34). 하박국의 ‘믿음’과 시인의 ‘성실’은 사실 동일하다. 에무나는 본래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을 반영한다(출 17:12). 그러므로 사역(私譯)은 전쟁 중에도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하듯 거르지 않는 꾸준함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런데도 악인의 활개에 시인은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진다(14,32,35절). 시인의 격려는 계속된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많은 부유보다 낫다(16절).’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21절).’ ‘의인은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께서 손을 잡아 주시니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24절).’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30-31절)

시인의 묘사는 아름답고 논리는 치밀하다. 곧 의인의 모든 신체 기관은 하나님의 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입은 지혜를 외치고 혀는 정의를 선포한다.

시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자리하고 있기에 그가 걷는 길에 실수가 없다. 의인의 입은 그의 지혜를 시인과 성도들에게 선포하며 악인의 횡포에 굴복하지 않도록 권면한다.

야웨를 신뢰하라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아라.
또 야웨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뤄주시리라.

네 길을 야웨께 맡기라 그가 이루시고 …(3-6절).

야웨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7절); 야웨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34절)

의인에게 무슨 보응이 필요할까? 그는 야웨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며 그의 가르침을 기뻐하며 변함없이 실천한다. 의인이 누릴 보응이란 야웨를 의지하고 율법을 거르지 않고 날마다 따르는 일이다. 마침내 야웨는 시인을 악인 가운데서 구원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마 10:22). 그가 야웨를 전적으로 의지했기(hs;x') 때문이다(40절). 의인의 입은 음식을 섭취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도구다. 의인의 입은 하나님의 뜻을 양식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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