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무슨 말인가? ‘의인’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보고 ‘믿음’을 ‘희망’으로 보면 다가오는 게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희망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는 사람이다. 세상이 혼탁하다고 절망하는 것은, 마치 포수에게 쫒기는 산짐승처럼 세상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이 암울하다고 상심한다면 그것은 세상이 혼탁해서라기보다, 그들의 심령 가운데 주님을 향한 믿음이 희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종말론적인 혼돈의 때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a). 빚지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응징의 기회를 갖도록 악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바르트)이다. 오직 사랑으로써만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세상이 암울하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해야 한다. 세상에 희망이 없어 모두들 살길이 막막하다며 탄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 누군가 내게 해코지를 하고, 터무니없이 모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시 사랑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 가운데 위기 아닌 때가 있었던가. 문제는 해를 더할수록 삶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진정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난폭한 시장경제는 인간성마저 위태롭게 함으로서 사람들은 자신을 희망으로 해석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사람마다 중심을 잃고 오직 동물적인 본능에만 충실한데서 오늘의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때문에 오늘의 국가적인 위기는 세상 중심의 가치에 떠밀린 정신의 위기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흔들리는 세상 때문에 하나님께서 희망을 가꾸신다는 사실, 아니 하나님 자신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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