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어제 S병원 전염병실에서 본 일이다. A라는 소녀, 7~8세 밖에 안 된 귀여운 소녀가 죽어 나갔다. 이질로 하루는 집에서 앓고, 그 다음날 하루는 병원에서 앓고, 그리고 그 다음날 오후에는 사망실로 떠메어 나갔다. 밤 낯 사흘을 지키고 앉아 있던 어머니는 아이가 운명하는 것을 보고, 죽은 애 아버지를 부르러 집에 다녀왔다. 그 동안에 죽은 애는 사망실로 옮겨 가 있었다. 부모는 간호사더러 사망실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사망실은 쇠 다 채우고, 아무도 없으니까 가 보실 필요가 없어요"하고 간호사는 톡 쏘아 말한다. 퍽 싫증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 애를 혼자 두고 방에 쇠를 채워요?"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렸다. "죽은 애 혼자두면 어때요?"하고 다시 톡 쏘는 간호사의 말소리는 얼음장같이 싸늘하였다. 이야기는 간단히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 몸서리쳐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죽은 애는 혼자 둔들 어떠리?" 사실인즉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심정! 이 숭고한 감정에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사가 나는 미웠다. 그렇게까지도 간호사는 기계화되었는가?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 야만인 인생을 더 사랑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죽은 애를 혼자 두는 것이 조금도 틀릴 것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볼 때에는 더 써서 무엇 하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사, 그의 과학적 냉정이 나는 몹시도 미웠다. 과학 문명이 더욱 발달하여 인류가 모두 '냉정한 과학자'가 되어 버리는 날이 이른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만 하기에도 소름이 끼친다. 정(정)! 그것은 인류 최고의 과학을 초월하는 생의 향기다.[출처: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대학작문 건국대학교 2001(나쁜 간호사)]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법과 제도가 잘되어 있는 나라다. 이러한 법과 제도는 모든 국민이 존엄과 가치를 갖게 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데 그 근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일성도 당연 국민의 먹거리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것, 그래서 인권이란 말이 그 무엇보다도 앞세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대한민국헌법 제2장.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은 귀에 걸면 귀 거리, 팔에 걸면 팔걸이”라는 식의 말이 회자됨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또한 관료(官僚)들의 법 집행에 있어서도 투명, 공정,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 속담의 “녹비에 가로왈(鹿皮에 가로曰)” 이란 말을 떠올리게 함은 아닐까? 물론 집행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정당하다. 그러나 “힘이 법이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거나, 그 법 집행이 국민들에게 아픔, 슬픔, 불안 등으로 다가 온다면 그 집행은 헌법적 가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대다수 언론은 균형을 상실한 반면, 일부 언론에서는 "참 나쁜 사람들,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이는 어느 한구석에서는 힘없는 백성들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아픈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 딸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과, 기계화 된 간호사 곧 사무적이고 원론적인 마음 뿐, 조금의 동정심마저도 찾아 볼 수 없는 냉정함을 향해 과연 우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로 인하여 헌법적 가치와 목적이 침해 받지 않도록 하기를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대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