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일현 목사.

“저는 낚시를 참 좋아합니다. 비바람이 불지라도 한 여름 밤 모기가 달려들어도 고기를 낚을 수 있는 것은 물 위에 0.5cm 나와 있는 찌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와 주님을 위하여 산다고 발버둥 칠 때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왔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고희(古稀)를 맞은 보라성교회 송일현 목사의 신앙 고백이다. 예장합동 총회 부흥사 대표회장,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대표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영성운동에 앞장서온 송 목사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송 목사는 지난 8월 28일 고희를 기념해 축하예식을 드렸다. 임준식 목사, 오공익 목사, 유무한 목사, 장희열 목사, 정여균 목사, 노태철 목사 등이 순서를 맡아 예배를 드렸고, 축하순서도 가졌다. 양명환 목사, 허영모 목사, 이종만 목사, 이용규 목사, 김요셉 목사, 장대영 목사 등 많은 선후배 목회자들이 참석해 송 목사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건넸다.

송일현 목사는 1946년 전남 보성 철저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믿음을 따라 어려서부터 열심히 주를 섬겼으며 교회학교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일등이었다. 예배드리기를 즐겨하고, 전도와 성경암송 등 모든 것이 솔선수범이었다.

송 목사의 어머니는 그런 송 목사를 보며 훌륭한 주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송 목사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돌보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광주로 유학 오면서 송 목사의 인생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 악한 것으로 들어가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로 낙인찍혀 긴 세월을 골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힘든 고통의 긴 세월 동안 송 목사의 어머니는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며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송 목사는 저의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기다려 주신 것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송 목사는 주님을 떠나 세상 것에 욕심내며 잘 살아보겠다고 큰소리치며 살았다. 송 목사를 긍휼히 여긴 목사님이 수차례 찾아와 나단 선지자처럼 권면하여도 듣지 않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위장 2/3, 십이지장 6cm를 잘라내는 고통을 당해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셨다. 불교신자였던 송 목사의 아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1985년 12월 31일 송 목사는 왠지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 문을 들어섰다.

한참 예배를 드리는 중 어느 집사님이 부르던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라는 복음성가를 듣는 순간 송 목사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무릎 꿇고 회개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가자고 흔드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지만 자신이 몸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4시간 30분 동안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고 돌아왔다. 그것은 분명 성령님의 역사였으며 주님을 다시 만나는 큰 기쁨의 순간이었다.

그 후 성산교회 담임목사님은 추운겨울인데도 송 목사를 산기도로 이끌었고, 이를 통해 또 주님을 강하게 만나고 모든 세상에서의 즐기던 것(낚시, 술, 도박, 담배)들을 하루아침에 끊었다. 또한 주님을 만난 후 2달 후인 3월 7일 바로 신학대학교에 들어갔으며, 신학교 재학 중 전도에 열정을 갖고 전국을 순회하며 영혼 살리는 일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농촌으로 여름방학 때에는 어촌 섬으로 전도여행을 매년 했다.

송 목사는 23년 만에 다시 만난 하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열정 때문에 신학시절 1년 반의 부교역자 생활을 끝으로 1988년 강동구 고덕동에 교회를 개척했다. 돈도 없고 성도도 없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시작했다. 준비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사 개척예배를 드렸다.

▲ 송일현 목사 고희 축하예식 광경.

개척 후 송 목사는 오직 전도와 기도에 집중하고 교회에서 지내며 하나님께만 의지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사를 주셔서 병을 고쳐주며,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게 하셨다. 폐병으로 결핵협회관리 대상이었던 아내를 기도로 치료하는 은혜도 베푸셨다. 송 목사는 그 큰 은혜를 갚는 길은 오직 전도라 생각하고, 성도들과 함께 많은 섬들을 다니며 미용전도, 의료전도, 노방전도 사역을 시작했고, 가는 곳마다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성도들과 체험했다.

또한 중국수교가 이르기 전 중국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를 세웠으며, 말씀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생명 걸고 말씀을 가르치며 저들에게 필요한 의류선교, 의료선교 등을 전개했다.

필리핀에는 한기부를 통해 교도소 내 교회를 3개 짓고 복음을 전했으며 실로암학교를 지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교회 새 성전 건축 중임에도 불구하고 송 목사는 사비를 털어 학교 부지를 구입하고 국제대한학교를 세워 신입생을 모집하고 개강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또 아르헨티나에 있는 인디어족들을 복음화시키는 선교사를 도와 그 곳에 학교부지를 사고 학교를 지어 주었으며, 지금은 그 곳을 통해 사역자들이 전 인디어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송 목사는 개척 25년 만인 2012년 2월 건축을 시작해 11월 27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어려운 성도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새 성전을 짓게 하셨고 헌당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축복을 보라성교회에 역사하셨다. 9개월 만에 아름다운 성전을 허락하셨고, 이에 동참한 모든 성도들은 장막의 축복, 자녀의 축복 등을 받았다.

송일현 목사는 “목회 28년의 사역을 돌아보면 부족하고 무지한 저를 들어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다”며 “이제 남은 사역은 세계선교를 통하여 귀한 일꾼을 세워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보내는 일과 ‘로고스말씀사역’을 통하여 마지막 이 시대에 목회자들을 바로 세우며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하게 하는 일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송 목사는 또한 “보라성교회는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며 말씀과 찬양이 살아 있고 사랑과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카페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비전센터에서는 선교문화(찬양과 율동) 사역을 보급하여 교회에 유익을 세우며 선교에 좋은 결과를 맺어 가고 있다. 그래서 지역복음화에 힘써 주님의 향기가, 색깔이, 맛이 나는 이 지역과 민족에, 세계열방에 영향력을 주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열심의 주님의 일에 충성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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